"허나 그 간자가 누구고, 누가 보냈든지 간에 밖으로 샌 이상 대원군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이번 거사의 진행에는 변함이 없다 이르셨습니다."
"그런데 왜 자넨 자꾸 초를 치는 게야?"
불안한 마음이 앞서는지 김병학이 짜증스럽게 물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조씨 가문의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지요. 간자의 건도 그러하고… 그날 그 시각에 조 대감 형제분께서 이곳에 든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몇이옵니까? 저희 둘과 대감마님의 형제분들 뿐 아니옵니까? 그런데 그 시각에 스며들어와 사랑채 밑에 숨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이겠습니까?"
안기주가 뜸을 들였다.
"그들이 일부러 심어 놓은 자다? 왜?"
"이렇게 만들기 위함이겠습죠. 저희가 준비되기 전 서둘러 대원군을 없애고 그 다음엔 조대비의 힘으로 아직 힘을 갖추지 못한 안동 김문에게 그 죄를 씌워 쓸어버리는 것. 그것이 예정된 수순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서… 설마?"
김병학은 믿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푸하하하… 자넨 정말… 하하하. 날카롭구만. 허나 이 김병학이 또한 그리 녹녹한 인물은 아니로고."
얼굴을 잔뜩 일그리던 김병학이 실성한 사람처럼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호탕하게 웃었다. 안기주와 김기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요, 쏘아 놓은 살이로다. 일은 시작되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볼밖에. 모쪼록 집 안팎 단도리를 잘 하고 내일 일을 준비해 두어라."
"예"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김병학의 뒤로 둘의 대답이 따라붙는다.
김병학이 안채로 사라지고 안기주와 김기가 마주봤다.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오른 분일세. 아무렴 믿는 구석 없이 이런 큰일을 도모하시기야 하겠는가."
스스로에게 하는 것인지 안기주에게 이르는 것인지 모를 말을 던지고는 김기도 돌아섰다.
"그러게. 그랬으면 좋으련만…."
안기주도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말인지 모르게 김기의 등 뒤로 우물거렸다. 그리고는 아주 짧게, 그의 입가에 냉소 비슷한 웃음이 배시시 흘렸다.
6
평안도 박천(博川).
청천강을 비낀 송현(松峴) 갖바치 집에선 늦은 밤임에도 불이 밝았다. 가죽을 다루는 곳인지라 인가와는 멀찍이 거리를 둔 곳이어서 환한 빛이 스며 나옴에도 주변의 스산한 기운은 전혀 눅질 않았다.
"이제는 속 시원히 말을 하게나. 자네 식솔들 그만 괴롭히고."
작업장 안 쪽에서 들려오는 우포청 부장 조필두의 음성이었다. 호롱 저편에서 나직이 소리만 들려오니 더욱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졌다.
"으으…."
무두질하는 판 위에 묶인 갖바치는 상한 동태처럼 축 늘어진 채 겨우 버둥대고 있었다. 평복을 한 조필두의 포졸 하나가 갖바치를 누르고 있고 나머지 둘이서 식구들, 그리고 갖바치의 직공들을 한데 묶어 놓고 감시하고 있었다.
포도청을 떠난 지 달포가 넘었다. 황해도를 벗어날 무렵 개성으로 갔던 수하들의 소식이 두절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황해 감영에 머무르고 있는 이덕기 종사관에게 가주십사 전갈을 남기고 정작 조필두 자신은 서둘러 평안도 행을 택했다. 그만큼 무언가 잡힐 듯 잡힐 듯 다가설 수 없는 어떤 윤곽이 조필두를 끌어 당겼던 것이다.
평양 감영에 불청객이 들었단 소식도 접하고 안주에 이르러서는 마두산 총격전의 실상도 상세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포 여각의 이만득 배가 닿았던 이곳 청천강까지 흘러들어 기어이 가죽을 부렸던 갖바치 집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한양에서 알 건 다 알고 내려온 몸이야. 그냥 불면 몸도 편하고 맘도 편하고 그러지 않겠나? 자 어서 말을 하게."
조필두의 달래는 음성이 더 뱀처럼 갖바치의 몸을 감았다.
"일껏 이르지 않았소. 만들어 놓으면… 매달 보름에 가져가는 이가 있다고…."
갖바치가 기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심한 매질이 아니었어도 흰머리가 태반인 초로의 중늙이 기력으로서는 이제껏 버틴 것도 용했다.
"그러니까 그자가 누구며 어디에 이걸 가져가느냐 말이닷!"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