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언제나 걱정거리인 작은 딸이랍니다!"

엄마, 오늘은 왠지 눈물이 나요

등록 2005.11.02 18:37수정 2005.11.0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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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는데, 문득 엄마생각이 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보는 엄마인데, 갑자기 출근하던 길을 되돌아 엄마에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따뜻한 품에 폭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마주 대하면 늘 투정이나 부렸지 엄마맘을 헤아려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것 뿐인가. 난 살아오면서 무수히도 많이 엄마 속을 썩였다.


처음 엄마를 마음 아프게 했던 건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인 걸로 기억된다.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대학을 가겠다는 내 생각과 달리, 아빠는 상업계고등학교에 진학해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하기를 바라셨다. 가정형편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 시절 어른들이 대개 그랬던 것처럼, 아빠의 보수적인 생각도 한몫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난 몇날 며칠을 눈물로 보냈고, 그럼에도 결국 상업계고등학교를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난 나름대로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도 많이 아파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지금도 그때 당신이 고집을 부려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시키지 못한 걸 후회한다는 말씀을 종종 하시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신다.

a 지난가을 온가족이 함께 갔던 설악산에서..부모님과 조카

지난가을 온가족이 함께 갔던 설악산에서..부모님과 조카 ⓒ 김미영

그리고 스물두 살이었던 해. 누구보다 열심히 내 삶을 살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수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출근하겠다며 평상시와 똑같이 나가던 딸이, 그날 저녁부터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한참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을 거쳐서 엄마에게 연락이 되었고, 그렇게 한동안 엄마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도 한참 후에 어렵사리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늘 밝은 얼굴인 엄마였는데, 난 그렇게 그늘진 엄마는 처음 보았다. 수척할 대로 수척해진 엄마를 보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 하지만, 내가 눈물을 보이면 엄마가 더 아파할까봐 눈물을 꼭 참아야했다.

시간이 흘러 처음 집에 들어가던 날, 아빠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먹는 딸을 위해 엄마는 정성껏 밥상을 차리셨고, 밥을 먹으려고 둘러앉은 밥상 앞에서 나는 아빠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어야했다. 꾸지람을 듣던 나는 몇 마디의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자 했는데, 그것이 그만 심한 언쟁이 되어버렸다. 옆에서 이쪽도 저쪽도 편들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런데, 그것뿐인가. 작년에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으며 나는 또한번 엄마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나도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여름이가 조금만 열이 나고 아파도 그 아픈 거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병도 아닌 '암'이란 병으로 아파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엄마 마음이 어떠셨을까?

수술을 받으려고 침대 위에서 수술실로 이동하는데, 내손을 꼭 잡은 엄마 손이 너무나 떨리고 있었다. 눈물까지 흘리시면서 말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혹시 수술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수술하는 세시간여동안 내내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내내 엄마는 늘 내 곁에 계셨다. 토악질해대는 딸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말이다.


a 쉬는날 여름이를 데리고 엄마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가서 찍은 사진

쉬는날 여름이를 데리고 엄마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가서 찍은 사진 ⓒ 김미영

그런 시간들을 지내오면서 나는 엄마에게 잘 해야지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엄마 옆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나는 엄마를 더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름이를 키우시면서 엄마는 엄마의 시간을 제대로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엄마는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놀러다니는 것도 좋아하신다. 그런데, 요즘엔 말 그대로 꼼짝을 못하시는 것이다. 내가 직장에 나가 있는 동안 내내 여름이를 돌봐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이가 태어나서 자라온 지금까지 삼년동안 내 곁에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여름이를 키우기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바로 옆에서 늘 내편이 되어주고 계신 엄마 덕분에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난 참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나는 일이 있어, 약속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막상 주말에 엄마가 약속이 있다고 하시면 속으로 집에 그냥 계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겉으로는 엄마에게 '친구분들도 만나고 엄마시간도 갖고, 즐겁게 보내시라'고 하면서, 내 진심은 나의 불편함을 핑계로 엄마를 묶어두고 싶은 것이다.

오늘 아침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사무친다. 그리고 나는 평생 엄마에게 효도해도 부족할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엄마는 나에게 엄마이자, 친구가 되어준다.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내 앞에 앉아계시며 나의 이런저런 수다를 다 들어주신다. 그리고, 밥을 많이 먹어도 늘 더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앉으나 서나 작은 딸 걱정을 하시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난 언제쯤이면 걱정거리가 아닌 딸이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엄마를 생각하면 저는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에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네요..저는 왜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하며 살고 있는 걸까요? ^^
더 추워지기 전에 엄마와 함께 단풍놀이 가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엄마를 생각하면 저는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에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네요..저는 왜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하며 살고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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