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98회

등록 2005.11.03 08:09수정 2005.11.03 08:09
0
원고료로 응원
“이제 마음이 바뀌었소? 본교보다는 천지회가 사형의 취향에 맞을 것 같으니까?”

백결의 말을 끊으며 빈정대듯 말하자 백결이 얼굴을 굳히며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끝까지 들어라!”

사형이 사제의 경솔함을 엄격하게 꾸짖는 듯한 태도였다. 애매하고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을 때는 모르겠더니 얼굴을 굳히자 사형의 위엄이 살아나고 있었다. 여하튼 아직은 사형이었다. 백결의 태도가 바뀌자 전월헌 역시 자세를 고치며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귀를 씻고 경청하겠소.”

“본교에서 나를 처음 거두어 주신 분은 방사제의 세 분 사부 중 한 분이셨다.”

“작고하신 지 십수 년이 된 천심(穿深) 어르신이라 들었소.”


“과거 독부자(讀傅子)라 불리신 분이었다. 본교 신주귀안(神珠鬼眼) 어르신과 함께 지모(智謀)와 신산귀계(神算鬼計)에 쌍벽을 이루었던 분이셨지.”

독부자(讀傅子)는 한때 귀곡문의 귀진자와 비견되기도 했던 인물. 백련교의 이상(理想)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백련교에 몸담고 있었으나, 백련교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乖離)속에서 많은 번민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 분 역시 본교를 배반하고 한동안 천지회에 몸담았다고 알고 있소.”

“그 분은 본교를 배반했던 것이 아니다.”

“지금 그 분의 경우를 들어 사형의 처지를 변명하고자 하는 것이오?”

“너는 지금....”

“담천의.... 그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도 사형의 사촌 여동생인 송하령 때문이 아니오?”

이미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더구나 형제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감추어졌던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었다면, 그래서 그러한 비밀들이 모든 의문스러웠던 일과 관련되어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떠한 말을 해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 변명처럼 들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송하령 그 아이를 본 적이 없다. 아니 보았던 보지 못하였던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절대 아니다.”

“...........!”

“우리가 천지회에 첩자를 심어 놓듯 천지회 역시 본회에 첩자를 심어 두었을 것이다. 그것은 황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나는 다른 변명은 듣고 싶지 않소. 중요한 것은 사형께서 정말 본회를, 우리 형제들을 배반했느냐는 것이오.”

백결은 잠시 말을 끊고는 나직한 탄식을 터트렸다. 이미 전월헌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다. 냉정한 것 같지만 인정이 많고, 사려 깊은 것 같지만 기분에 치우치는 경솔함이 있다. 또한 독단적인 것 같지만 형제들에게 대한 신뢰와 사랑은 맹목적이다.

그런 그에게 형제 중 누군가가 자신들을 배반했다는 사실은 그 어떠한 일보다 중대한 일이다. ‘절대’라는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

백결은 애틋한 눈길로 전월헌을 바라보았다. 이제 말을 해야 했다. 전월헌의 경솔함으로 인하여 나중에 일이 틀어지더라도 말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만약 이 자리를 그냥 피해버린다면 백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 역시 괴로움에 처할 수 있다. 말해주어야 할 이유는 또 한가지 있었다. 백결 역시 전월헌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만약에 말이다.”

하지만 아직 자신도 확신이 없다. 그토록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암흑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그 뚜렷한 형체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망설이다가 어렵게 생각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사형!”

전월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태도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의미다.

“참을성이 없는 것은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하구나.”

“사형이 아니라면 이 정도까지 참지 않았소.”

전월헌의 얼굴에는 혼돈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라서 지금 마음이 편할까? 백결은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본교를.... 그리고 내 형제들을 배반한 적이 없다.”

믿건 믿지 않건 그것은 이제 전월헌의 몫이다. 백결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는 전월헌의 눈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끈끈하게 엉켜들었다. 전월헌으로서는 반드시 믿을 수는 없지만 내심 안도하는 듯 했다. 아니 거짓말이라도 그렇게 대답해 주길 바랐고, 더 이상 사형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천심 어르신 뜻이었소?”

천지회에 가입하게 된 이유를 묻는 것 일게다.

“대사형이 원한 일이기도 했다.”

“대사형이?”

의외였다.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백련교의 모든 대소사는 선대 어른들과 상의하여 셋째사형이 처리해왔다. 대사형이나 둘째사형은 언제나 지켜보며 따를 뿐이었는데 외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무언가 있음을 느꼈다.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본회에도 천지회의 첩자나 무림방파나 황실의 첩자가 스며들어 있다. 크큿....”

백결은 말을 하다가는 발작적으로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우스운 것은 수뇌부에서는 누가 첩자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첩자가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도 색출해 내지 않는 다는 것이지. 나 역시 천지회에서 본교의 첩자인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천지회에서 백결이 첩자인지 알고 있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이것은 목숨을 내놓고 있는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백결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백련교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한 일은 아니다.”

“......?”

백결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들었다. 전월헌은 직감적으로 그가 지금 말하는 것이 심각하고 중대한 것이란 사실을 느꼈다. 잠시 닫혔던 입술이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본회건 천지회가 되었건, 그리고 전 무림이나 황실까지도 지금 누군가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쿵!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월헌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누군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백련교를 이용하고 있다고 해서, 아니 백련교 뿐 아니라 천지회, 무림, 황실까지도 이용하고 있다고 해서 놀란 것은 아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