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 무섭게 감영 나졸들이 집 안팎을 드나들며 부산을 떨었다. 다행히 화재는 다른 채로 번지지 않고 사랑채만을 태우고 진화되었으나 인명이 상한 터여서 발빠르게 감영에 사람이 갔던 터였다. 나졸들이 통제하는 사랑 담벽 안에선 뼈대만 남은 사랑채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아직도 가는 연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집안 사람들은 황참봉이 한결같이 늦도록 서안에 앉아 있었다 하옵니다.”
집안 식솔과 가노들을 탐문한 일송이 다가와 윤석우 군관에게 말했다.
“결국 정황으로 보아 초가 넘어져 불이 붙고, 잠든 황참봉이 변을 당했다?”
윤석우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다 타 버린 사랑채를 바라보았다. 아직 까맣게 그을린 황참봉의 시신은 치워지지 않은 채였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 황참봉에게 숨을 틀 여지를 주었는데......유기전 주인처럼 스스로?”
“그렇기야 하겠습니까요. 하고 많은 방법 중에 제 몸에 불 붙이고 죽는 일이 생각처럼 쉽겠습니까요?”
윤석우의 말에 일송이가 대꾸했다.
“비장 나으리 정현우 의원이 당도했습니다.”
나졸 하나가 다가와 윤석우에게 아뢰었다.
“그래?”
윤석우가 반색을 하며 사랑 중문으로 뛰어갔다. 정현우와 그의 사위 이경은이 검험을 위한 법물 보퉁이를 들고 문을 들어서다가 윤석우를 보고 인사를 올렸다.
“화재로 인한 인명상해라면 식전 댓바람부터 서둘 일은 아닐 터인데 윤 군관께서 무엔가 집히는 바가 있으신 게지요?”
정현우 의원이 사람인 죽은 현장에 닿은 사람 같지 않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윤석우가 정현우를 안내하며 귀엣말처럼 슬쩍 답을 했다.
“아무래도 감영에 왔던 패거리, 아니 안주에서 일을 냈던 패거리와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어찌 그리 생각을.....?”
“제가 당했던 그 권기범이라는 패, 그 자들이 탔던 기마가 여기 황참봉의 말입니다. 처음엔 부인하다 끝내는 도둑 맞은 것이라 둘러댔습니다만 이 자도 그 패에 연루된 자가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왜 죽는단 말입니까?”
“이유가 있겠지요.”
윤석우가 정현우에게 그 이유를 알아내라는 듯 말을 맺었다. 둘이 잠깐 말을 나누는 사이 이경은이 어느새 검안 준비를 마쳤다. 시신에 다가선 정현우가 얼마 뒤적이지 않아 싱겁게 말했다.
“타살입니다.”
“예?”
일송이와 윤석우가 의외의 손쉬운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전에 불에 타 죽은 경우라면 입이 벌어져 기맥(氣脈)이 왕래하므로 시신의 입과 코 안에 그을음과 재가 들어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음은 이미 절명한 후에 불에 탔단 뜻이지요.”
정현우가 궁금증에 답을 했다.
“그렇다면 혹 지병에 의해 이미 절명한 후 실화로 불이 붙었을 가능성은......?”
윤석우가 물었다.
“그렇다면 시신의 살빛이 타서 누렇게 되고 혹은 두 손을 쥐고 두 팔을 구부려 가슴 앞에 두며, 두 무릎 또한 구부리고, 입과 눈을 뜨고 있거나 이를 다물고 입술을 깨문 채 지고(脂膏)가 타서 누렇게 튀어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진물이나 피부가 벗겨진 데 없이 목 아래 졸린 흔적만 있는 경우도 아니니 졸려 죽은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럼 어떻게.....?”
“잠시만 기다려 보시지요.”
정현우가 시신이 있던 자리를 부채질해 재와 티끌을 날렸다. 바닥이 깨끗이 치워지자 이경은에게 말했다.
“시신이 있던 바닥에 신초를 뿌려보거라.”
“예.”
이경은이 정현우의 지시대로 법물 꾸러미에서 신 초를 꺼내 바닥에 조금씩 뿌리자 서서히 선홍빛 핏빛이 드러났다.
“황참봉은 자상(刺傷)으로 죽었습니다. 누군가 칼로 찌른 후 불을 질렀군요. 시신은 변을 당한 뒤 옮겨진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 살해된 것이 맞습니다. 시신 밑에 띠나 지붕의 재료가 깔려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도 불이 난 뒤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 상태로 불이 난 것이고요.”
검험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했던 결과대로 싱겁게 끝이 났다. 문제는 어떻게 범인을 잡느냐였다.
“필경 범인은 집안에 있습니다. 가솔의 소행이 아니면 내부인과 연루된 자에 의한 소행입니다.”
“짚히는 데라도 있소이까?”
“제 느낌대로라면 황참봉은 무언가 비밀을 털어놓으려다 입막음을 당한 것입니다. 황참봉은 그 도당에 깊숙이 선이 닿아 있던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이 입막음이 어쩌면 단서가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일송을 향해 돌아서며 바쁘게 명을 내렸다.
“원신인(元申人)의 진술을 확보하고 집안사람들을 추궁토록. 그리고 나졸들을 풀어 평소 황참봉의 행실에 대한 이웃의 공술(供述)을 받도록 하라. 원한 관계는 없는지, 어딘가 꾸준히 교우하는 사람들은 없었는지 말이야.”
“예.”
일송이 머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정현우가 윤석우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일사분란한 지시만큼이나 쉬 풀릴 일인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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