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 꽃피운 한국의 IT 사랑

[인터뷰]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의 염승석 팀장

등록 2005.11.09 15:53수정 2005.11.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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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 먼 이국땅의 젊은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IT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2005년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으로 동티모르에서 7월12일~8월13일까지 한 달간 'IT 전령사'로 활약하고 돌아온 염승석(29)씨. IT 강국의 젊은이로서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정보통신부와 정보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은 개발도상국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민간외교 활동으로, 지난 2000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ASEAN)+3'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정보격차 해소의 방법으로 제안해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6기 봉사단은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34개국을 찾았고 염승석씨는 동티모르를 맡았다.

동티모르로 날아간 '로로새'

"99년 평화유지군으로 동티모르에서 8개월 간 군복무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군복무가 끝난 다음 해, 그리고 또 다음 해에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난민캠프에서 봉사했습니다. 인터넷청년봉사단으로는 작년 여름과 겨울에 이어 이번이 3번째 방문이었습니다."

동티모르는 오랜 세월 포르투갈 관할이었지만 1975년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독립운동이 이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살해당했다. 1999년, 독재자 수하르토에 이어 하비비가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이 되면서 동티모르는 주민투표를 통해 결국 독립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친 인도네시아 세력과 독립 세력끼리 충돌했고 UN이 중재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평화유지군이 동티모르에 발을 내디딘 이유다.

a 염승석 팀장

염승석 팀장 ⓒ 이정일

염승석씨에게 동티모르는 각별한 나라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으로 활동한 것까지 합치면 거의 3년간 동티모르에서 살다시피했다. 이번에는 3명의 동료와 함께 '티모르 로로새'(Timor LoroSae, '로로새'는 '해뜨는'이라는 뜻의 동티모르어)라는 팀을 짜서 방문했다. 함께 간 백상윤(27)씨는 평화유지군이고 황지원씨와 김성현씨는 컴퓨터를 전공하는 친한 후배다.


"동티모르에 가서 그곳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자고 하니까 다들 흔쾌히 응했습니다. 성현이는 작년에 다른 나라로 봉사활동을 간 경험이 있었고 상윤이는 평화유지군으로 동티모르에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성현이만 처음이었지만 굉장히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팀을 꾸려 5월 서류심사, 6월 면접을 거쳐 6기 봉사단에 뽑혔습니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은 3~4명이 팀을 이뤄 서류와 면접을 통과하면 각자 지원한 나라에서 한 달간 봉사활동을 펼친다. 작년에는 여름과 겨울 두 번에 행사가 있었지만 올해는 여름에만 마련되었다. 이번 6기 봉사단은 33개국의 74개 팀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외교관으로서 3박4일간의 소양교육을 받은 뒤 7월 초 각자의 목적지로 날아갔다. 7월13일, 염승석씨도 3명의 팀원을 이끌고 동티모르로 향했다.


"싱가포르까지 6시간, 발리까지 2시간, 여기서 다시 티모르까지 1시간을 날아가 목적지인 동티모리 국립대학에 도착했습니다. 전체 학생이 3,4천 명에 불과한 조그만 학교입니다. PC실이 있긴 하지만 UN과 한국에서 지원해준 35대의 PC가 전부이고 그나마 반 이상이 고장이 난 상태였습니다."

동티모르 국립대학은 염 팀장이 작년에 두 번이나 찾았던 곳이다. 열악한 교육 환경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한국서 출발할 때 하드디스크와 메모리, 허브와 랜 케이블 등을 챙겨갔다. 물론 봉사단에게는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 USB 메모리 등 기증용 장비가 딸려 나오지만 동티모르와 같은 곳에는 메모리나 하드디스크와 같은 부품이 절실히 필요했다. 염승석씨는 팀원들과 얼마씩 거둬 부품을 샀고 큰 맘 먹고 프린터까지 장만해 갔다. 그리곤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서 20대까지 작동시켰고 네트워크를 연결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가뿐

도착 첫날, 시스템 점검이 끝나자 한 달간의 교육 일정을 짰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누가 어떤 과목을 맡을 것인가를 팀장인 염승석씨가 조율했다. 수업 과목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네트워킹이었다. 여기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시간도 넣었다.

"엑셀은 성현이, 포토샵은 지원이, 한국문화는 상윤이에게 맡겼습니다. 자기 과목이 아니라도 다들 수업에 참가해서 학생들을 도왔지요. 과목마다 담당이 있긴 했지만 결국은 4명이 모든 과목을 다 함께 가르치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숙소는 학교에서 걸어 20분 거리에 있는 현지인의 집으로 정했다. 염 팀장이 평화유지군으로 근무할 때 친분을 쌓았던 이 지역 청년단체의 회장 집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한국에서 온 청년들에게 선뜻 방 한 칸을 내어준 마음씨가 너무나 고마웠다.

"동티모르는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자리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숙소를 내준 가족도 생계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잠자리 외에는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서 식사를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해결'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배를 채우는 수준이었다. 아침은 굶었고 점심은 오전 교육이 끝났을 때 주변 식당에서 해결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집까지 걸어오다가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때웠다. 정부가 봉사단에게 주는 생활비는 개인당 50만 원 정도로, 한 달간 숙식을 해결하기에는 빠듯했다. 음식도 맞지 않아 고생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투지는 대단했다. "현지 문화를 제대로 접해보자"며 고추장이나 김치 등을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음식은 두 끼밖에 먹지 못해 늘 허기진 한국 젊은이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저야 경험이 많아서 괜찮았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음식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한 명은 1주일 이상 배탈을 했으니까요. 동티모르의 음식을 두루 맛보겠다는 애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나마 입에 맞는 볶음밥과 우동만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겪었던 불편은 학생들의 컴퓨터 실력이 늘어가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 염 팀장이 동티모르에서 보낸 시간은 한 달이지만 준비기간과 토, 일요일을 빼면 실제 수업 날짜가 20일에 불과했다. 하루 8시간의 빡빡한 수업이 불가피했다.

하루 8시간의 수업 강행군

"오전 8시30분부터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를 가르치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포토샵과 네트워킹, 한국문화를 수업했습니다. 쓸 수 있는 컴퓨터가 20대뿐인 데다 공간도 협소하고 일정도 넉넉하지 않아서 학생들은 한 과목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워드와 엑셀이 가장 인기 있었다. 수업을 신청한 200여 명의 학생 중에서 워드와 엑셀 반에는 80명 이상이 몰려 반을 둘로 나눠야 했다. 작년에 수업을 들었던 이들은 고급반, 이번이 처음인 학생들은 초급반으로 묶었다. 초급반은 문서를 쓰고, 폰트를 바꾸고, 테이블을 만들고, 서식을 이용하는 것까지 가르쳤다. 고급반은 기본기를 서둘러 끝내고 테이블을 꾸미거나 그림을 장식하는 기술을 알려줬다. 엑셀 고급반은 매크로까지 진도가 나갔다.

"워드나 엑셀이 인기가 많은 것은 취직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관공서나 정부에서 일하려는 학생들은 이 두 가지 프로그램을 익히는 게 필수이지요."

정보화 교육에 목말라 있던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인지 배움의 열기는 대단했다. 수업이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고 질문을 쏟아내는 바람에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애를 먹었다. 다들 집에 컴퓨터가 없으니 한국에서 준비해간 자료를 달달 외우는 지루한 숙제를 내주었지만 모두들 열심이었다.

그런데도 수료증을 받은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수료과정이 그만큼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적어도 동티모르에서는 수료증이 취업을 보장할 만큼 막강한 위력을 갖는다. 'IT 강국' 한국이 실력을 인정했다는 증거이므로 단순히 수업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무에게나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수업을 두 번 이상 빠지거나 중간, 기말고사에서 70점 이하로 떨어지면 수료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전체 200명 중에서 겨우 60명 정도가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수료하지 못한 이들 중에는 봐달라며 통 사정을 하기도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너무 야박하다'며 눈을 흘겼을 학생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수료증을 남발하면 봉사활동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잡았다. "오르기 힘든 만큼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은 두 배 세 배 커질 것"이라면서 "까다로운 수료증은 학생이나 동티모르에 모두 이익"이라고 이해시켰다.

피부색의 장벽을 넘는 우정 쌓아

동티모르에서 '디지털 교육'을 펼치는 나라는 한국과 호주다.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취지는 같지만 호주는 학생보다 교수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앞서 정보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함 팀장도 반을 따로 나눠 교수들을 가르쳤지만 생각만큼 학습효과는 좋지 않았다. 수업에 참여한 34명의 교수 대부분은 수료증을 받지 못했다. 열정도 학생들보다는 떨어졌다. 호주의 교육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동티모르의 미래를 짊어진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의 학교 측 대표를 맡았던 싸빌 교수님에게는 특별과외를 해드렸습니다. IT 기술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데다 동티모르 국립대학의 정보화를 책임질지 모르는 분이었으니까요. 본인이 워낙 열심히 하셔서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로 실력이 쌓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다 학생들의 실력을 꼼꼼히 가려서 수료증을 줘야 했으므로 염승석씨는 '호랑이 선생님'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긴장의 끈을 풀고 학생들과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며칠 지나자 피부색의 장벽은 눈 녹 듯 사라졌다. 운동장에서 공도 함께 찼고 주말에는 바닷가로 야유회를 가기도 했다.

"학생들의 나이가 18, 19, 20살로 다들 동생 같았습니다. 수업시간에는 호랑이 선생님이었지만 교실 밖에서 친구처럼 지냈지요. 그렇게 정이 들었다 싶으니까, 어느 새 일정이 끝났더군요."

7월13일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복귀날짜가 다가왔다. 가난하고 배고픈 나라이지만 동티모르 학생들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했다. 8월12일,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4명의 선생에게 학생들은 손수 짠 목도리나 정성껏 만든 조각품을 슬그머니 쥐어주었다. 감사의 표시였다. 값 비싼 게 아니어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지만, 한국의 청년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에 감격했다.

"몇몇 학생들과는 지금까지 e-메일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아루리타, 메메시오, 도밍가는 참 똑똑하고 밝은 친구들입니다. 수료를 못했지만 아구스토는 여전히 우리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번에는 꼭 수료증을 받을 것입니다."

동티모르는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다. e-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학생들이 e-메일을 보내려면 몇 시간을 걸어야 하지만 꼬박꼬박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다. 염 팀장은 그런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예쁘고 고맙다.

어학과 IT 기술 철저히 준비

지난 10월12일, 정보통신부 청사에서는 '2005년도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 귀국보고대회'가 있었다. 33개국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6기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을 격려하는 이 자리에서 염승석 팀장이 이끈 티모르 로로새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봉사원의 성실도, 봉사활동 내용과 성과, 현지 호응도와 교류성과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다. 티모르 로로새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한 '세만갓 아 자'와 키르기스스탄의 'IT 스탯 타이거'가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우리 팀이 최우수상을 받았지만 33개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74개 팀 모두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IT 강국인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개발도상국에 디지털 기술과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활동은 대단히 뜻 깊은 일이니까요."

염승석씨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10년 넘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는 영어를 전공했다. 이런 경력으로 평화유지군에서 통역을 맡았고 그때 동티모르어인 떼뚬어도 배웠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은 UN이나 국제적십자와 같은 기구에서 일하려는 그에게 대단히 좋은 경험이었다.

"내년에도 또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가고 싶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3번으로 제한되었다. 결국 그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봉사였던 셈이다. 하지만 "내년에 동티모르 국립대학에 갈 팀에게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다 알려주겠다"고 약속하면서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해외에서 봉사한다는 열정만으로는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3~4명으로 이뤄진 팀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합니다. IT 전공자와 현지 언어에 밝은 사람들이 팀을 이루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지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계획을 짜서 면접을 볼 때 신뢰를 줘야 합니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은 그냥 외국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게 아닙니다. 민간외교관입니다."

머나먼 동티모르까지 가서 컴퓨터 지식을 나눠 주고 온 'IT 선교사' 염승석씨. 비록 그들에게 컴퓨터 기술을 가르쳐주러 갔지만 자신에게는 또 다른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봉사를 하러 갔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고 그의 선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PC사랑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정일 기자는 PC사랑 취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PC사랑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정일 기자는 PC사랑 취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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