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손맛 느껴지는 별난 호떡 드세요

서강대 앞 '별난 씨 호떡' 운영하는 두 청년을 만나다

등록 2005.11.10 09:46수정 2005.11.1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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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대입 수시 2차에서 원하던 대학에 아들이 합격해 기쁠 텐데도 목소리가 영 아니었다.


“선생님께 뭐라 감사의 말씀 올려야 할지,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장사하다보니…. 그나저나 선생님! 병수(가명)한테 전화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전화하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자초지종 듣고 보니 병수 녀석, 괘씸하기만 했다. 재래시장 구석에서 장사하시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짬 없이 고생인 어머니한테 백만 원 가까이 하는 핸드폰 사달라고 저 야단이란다.

물론, 그동안 핸드폰도 없이 공부만 들입다 판 녀석한테 어머니가 약속하기는 했단다. 그래도 그렇지, 백만 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이라더냐? 어머니가 학원비 대느라 얼마나 눈물겨웠는지 녀석이 정말 몰랐다는 말인가?

학교 선생도 아닌데 다짜고짜 전화해 야단친다고 요즘 아이들이 들어먹겠나 싶어 살살 달래 저녁이나 먹자고 불러냈다. 삼겹살을 구워 입에다 넣어주면서 도수 낮은 술을 시켜 딱 석 잔 축하주로 안기고는 신파조로 녀석의 잘못을 꾸짖었다. 다행히 대들지 않고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며 눈물을 흘리는 녀석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대학에 합격하고 세상이 다 자기 것 같은 터에 평소 갖고 싶었던 핸드폰이 얼마나 탐났으면 그랬으랴.

서강대 들머리에서 몸과 맘이 건강한 젊은이들을 만나다


a 서울 신촌. 서강대 정문을 바라보며 왼쪽에 <서태웅호떡집>이 있다.

서울 신촌. 서강대 정문을 바라보며 왼쪽에 <서태웅호떡집>이 있다. ⓒ 이동환

9일(수) 오후. 서울 서강대 언저리에 '별난 씨 호떡'이 난리도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나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학원 강의 시간 맞추려면 빠듯했지만 꼭 만나고 싶었다. 요즈막 젊은이들, 옷에 때 묻히는 일은 질색이라는데 사서 고생하는 친구들이라니 얼굴 좀 봐야지. 작업복일망정 일식 풍으로 제법 멋도 낸 친구들이 하는 호떡집이라고?

a 왼쪽,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이주웅(20)군. 오른쪽, 서강대 경영학과 2학년 김태훈(21)군. 암만 봐도 참 멋진, 딸 있으면 꼭 점찍고 싶은 청년들이다.

왼쪽,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이주웅(20)군. 오른쪽, 서강대 경영학과 2학년 김태훈(21)군. 암만 봐도 참 멋진, 딸 있으면 꼭 점찍고 싶은 청년들이다. ⓒ 이동환

소문은 사실이었다. 눈빛만 봐도 그 튼실함과 성실함이 몰씬 피어오르는 젊은 친구 두 사람. 그들이 굽고 있는 것은 호떡이었다. 그러나 여느 호떡과는 좀 달랐다. 튀겨내는 것은 중국식호떡 비슷한데 갖은 고명을 다 얹은, 그야말로 나로서는 처음 보고 맛보는 호떡이었다. 튀겨낸 호떡이 조금 식을라치면 집게로 속을 판 뒤 아몬드, 땅콩, 해바라기 씨, 호박씨, 건포도까지 다섯 가지 재료를 아낌없이 비집어 넣은 호떡이다.


a 참 열심이다. 집안 막내답게 장난기가 오도독 매달린 김태훈군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가면을 쓰고 돌아보며 놀래킨다. 이주웅군은 집안 장남답게 손놀림이 야무지다.

참 열심이다. 집안 막내답게 장난기가 오도독 매달린 김태훈군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가면을 쓰고 돌아보며 놀래킨다. 이주웅군은 집안 장남답게 손놀림이 야무지다. ⓒ 이동환

부산이 고향인 두 친구는 손이 척척 맞는 듯 보였다. 김태훈군이 부산에서도 유명한 맛집에서 전수받아 시작했다는 별난 씨 호떡. 군대 가기 전에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보고 싶어 금년 2학기 휴학계를 내고 지난 9월부터 시작했단다. 둘 다 해병대에 지원해 시험을 치렀고 합격소식이 오면 내년 1월 2일에 입대한다고(척 보니 합격이구먼).

이름이 왜 '서태웅호떡집'인가 했더니 서강대의 '서'와 자기들 이름에서 한 글자씩 땄단다. 처음 창업 얘기가 나온 것은 올해 4월이라고 했다. 창업 자금을 만들기 위해 둘 다 지난 여름, 무진장 고생을 한 모양이다. 태훈군은 여름방학 동안 부산에 내려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웅군은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아진 준비자금이 300만 원.

a 저 많은 방송에 출연한 게 아니라 희망사항이라고. 역시 젊은이들 답게 밝다. 하지만 소문 덕분에 최근, KBS <세상의 아침>에 잠깐 나왔단다. 호떡을 들어보니 내용물이 꽉 차서인지 꽤 묵지근하다.

저 많은 방송에 출연한 게 아니라 희망사항이라고. 역시 젊은이들 답게 밝다. 하지만 소문 덕분에 최근, KBS <세상의 아침>에 잠깐 나왔단다. 호떡을 들어보니 내용물이 꽉 차서인지 꽤 묵지근하다. ⓒ 이동환

일단 자금이 모아지자 두 친구는 소자본으로 가능한 노점을 하기로 하고 아이템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고향의 맛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그들은 부산에서 유명한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를 고르기로 했다. 유부우동, 불티나호떡, 별난씨호떡, 오징어초장무침을 놓고 고민했는데 처음 결정은 유부우동이었다. 그러나 유부우동으로 유명한 할머니가 기술 이전을 꺼리는 데다가 높은 단가를 요구하시는 통에 무산되고 말았다.

a 먹어보니 진짜 맛있다. 별미다.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맛을 내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먹어보니 진짜 맛있다. 별미다.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맛을 내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 이동환

결국 별난 씨 호떡으로 아이템을 결정한 그들은 반죽하기와 일정하게 떼어내기, 알맞게 튀기기와 적당하게 고명 넣기를 연습하기 위해 손등과 바닥, 기름에 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매달렸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사업. 지난 4월부터 계획해 9월에 창업하기까지 그들은 그야말로 젊음을 온전히 불태웠다.

이제 학우에게 이전해주고 싶어요

석 달밖에 안 됐지만 입소문이 돌면서 고생한 만큼 나름대로 수입이 짭짤(?)했던 모양이다. 두 친구 모두 군 입대를 앞두고, 학비 버느라 고생하는 학우가 원한다면 이전하고 싶단다.

이주웅 : “나누고 싶어요. 저희가 처음 목적한 대로 어느 정도 되었거든요. 고생도 했고 여러 경험도 했고, 무엇보다 군대에 가야 하니까요. 1기, 2기, 3기하는 식으로 두어 달씩 여기서 경험을 쌓으며 돈도 좀 벌고, 다른 학우한테 또 이전하는 방법으로 이 자리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김태훈 : “주웅이나 저나 서울에 와서 여태까지 생활비 문제로 부모님께 손 벌린 적 없어요. 어떻게든 저희가 벌어서 대고 공부했죠. 하겠다는 학우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저희가 군대 갈 때까지 계속해야겠지요. 아 참! 기사 쓰실 때 저희 여자 친구 없다는 얘기도 꼭 써주세요(멋쩍은 웃음).”

내게 고만한 딸 있으면 당장 손목 쥐어주고 싶을 정도로 암만 보고 또 봐도 참 아름다운 청년들이다. 저런 청년들이 있어서 참 살맛난다. 아무리 싯누런 진흙탕 늪이라도 연꽃은 고이 피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바른 사람, 아름다운 청년들은 꼭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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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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