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춘이란 인물이 아직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방춘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방백린은 은근한 눈길로 유항을 보며 달래듯 말했다.
“문제는 당신이 맡고 있는 연동(蓮洞)이야. 만약을 위해서 연동만큼은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어야 돼. 안배한 기관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다른 자들이 손을 대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군.”
“걱정 마세요. 요사이 몇 명이 들락거리고는 있지만 알아내지 못할 거예요.”
유항은 방백린의 품을 파고들며 교태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제거해. 특히 대사형 쪽의 인물이라면 각별히 주의하고….”
“알고 있어요.”
슬그머니 방백린의 손이 유항의 옷 섬을 파고들었다. 유항의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움찔거렸다. 부드러운 젖가슴이 손 안에 들어왔지만 방백린의 눈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사형은 분명 눈치 채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설사 그가 모두 알고 있다 해도 이미 대세를 돌릴 수는 없다. 성취는 준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다. 그 열매를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다 해도 결국 그것을 먹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천하라는 열매를 차지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왔다. 하지만 천하라는 열매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오직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이었다.
파파파--팍---!
갑자기 방안에 걸려있던 등이 꺼지기 시작하고, 달뜬 신음소리가 유항의 붉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사내에게 있어 여자는 팽팽한 긴장을 해소하는데 필요한 좋은 도구일 수가 있다. 마음의 긴장 뿐 아니라 굳어있는 몸의 긴장까지도 부드럽게 풀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여하튼 아무도 가지 못했던 미지의 경지에 도달한 염화심력이 무의식중에 발출되는 것도 그가 요사이 매우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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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궁궐 내에 소리 없이 퍼지고 있었다. 귀신이 나타나는 곳은 주로 외궁(外宮)의 서쪽이었는데 그곳은 궁인들이라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천관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궁녀들의 거처인 시화원(侍和院)과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궁녀 중에 간혹 귀신을 보았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궁궐의 치안을 담당하는 금의위(錦衣衛)에서는 소문이 도는 것을 엄하게 다스리고는 있었지만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막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뜬소문만은 아니었다.
쉬쉬 하고는 있지만 천관이 있는 곳에서 두 명이 자다가 귀신에 놀라 죽었다는 소문도 그럴듯한 정황과 함께 퍼졌고, 올해 어전관(御前官)으로 발탁된 사(俟) 씨 성의 환관(宦官)이 거처에서 혀를 쭉 빼물고 목을 맨 채 발견된 것은 바로 어제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다.
쉬쉬 하고는 있었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오늘 아침에 발견된 익사한 시체였다. 궁내 천관 쪽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금의위의 추자순(鄒藉栒)이라는 영반(領班)이 어제 저녁에 급히 내궁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해자(垓字)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었는데 너무나 괴이쩍어 경계를 서고 있던 금의위 병사들도 귀신의 존재를 믿게 될 정도였다.
해자(垓字)란 외궁과 내궁의 경계나 황제의 처소 주위에 담을 쌓고 사오 장 정도의 폭으로 땅을 파서 인공으로 물을 채워 놓은 못(沼)을 말한다. 암살 등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입구는 다리를 놓아 출입하게 하여 외부인이 허락 없이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더구나 담 위에 군데군데 망루를 세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계를 하게 되어 있어 어느 누구라도 다리와 연결된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든 것이 해자다. 아무리 뛰어난 무림고수라 하더라도 한번에 사오 장을 뛰어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더구나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둠을 틈타 스며들더라도 도저히 경계하는 병사들의 이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같은 금의위 병사들이 경계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추자순이 해자에 빠져 익사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더구나 자살을 했건,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끌려 들어갔다 해도 물에 빠지는 소리가 크게 나거나, 최소한 비명소리라도 나야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어둠이 깔린 시각이라 해도 망루에서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는 가운데 아무런 소리도, 어떠한 기이한 기운도 감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날이 밝아서야 익사한 시체로 발견된 것은 귀신의 소행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상대부 이 작자가 정말로 귀신이라도 되어 돌아 온 것인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벌어지자 연병문은 당황하고 있었다. 믿었던 좌후범마저 병을 이유로 들어 누워 버렸다. 단순히 핑계만은 아닌 것이 낯빛이 창백하고 고열로 시달리고 있었다.
(나를 노리고 있는 게야… 확실한 물증을 잡기 위해 서서히 목줄을 죄는 것이지.)
애당초 귀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 연병문이었다. 설사 귀신이 존재한다 해도 상대부의 귀신이라면 모를까 다른 귀신이라면 이럴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면 흉수는 상대부이거나 자신의 은밀한 내력을 아는 자였다.
이미 시신으로 발견된 자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연병문 만큼은 누구보다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천관의 수하 두 명은 물론 환관이나 이곳 호위를 맡고 있는 추자순이 죽은 것이 바로 뚜렷한 증거였다. 죽은 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심어놓은 심복 들이었다. 자신의 심복들만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왜 직접 나를 노리지 않는 것일까?)
연병문은 매사에 조심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언제 어디서 자신을 노릴지 몰라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느낌은 아직까지 들지 않았다. 귀신과 같은 솜씨를 가진 흉수라면 자신의 호위를 뚫고 노릴 만도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왜…? 왜…?)
차라리 자신을 노린다면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흉수가 누군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정말 상대부가 살아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내력을 파악한 그 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 마음이 들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도움이라도 청해야 하는 것일까?
“……!”
그러다 문득 연병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갑자기 흉수의 의도가 무언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확실해지자 허둥대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바로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고 초조하게 몰아가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 내가 움직이길 바라는 거야. 그래서 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고자 하는 것이지.)
여우는 위험을 느끼면 자신의 굴로 몸을 숨긴다. 이쪽저쪽에서 몰이꾼들이 소리를 질러대면 당황하여 사냥꾼이 뻔히 보고 있는데도 굴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두 개의 구멍을 파놓아도 한쪽에서 불을 때 연기를 보내면 다른 쪽 입구가 파악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도 말이다.
만약 당황하고 초조하여 궁내에 자신과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인물들과 회합이라도 가졌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터였다. 흉수의 의도를 짐작하게 되자 그는 이제 오히려 느긋해졌다. 이제는 시간싸움이었다. 모든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때 어설픈 행동으로 대사를 망치면 안 된다.
(최소한 달탄 정벌을 떠나는 장수가 누군지 정해진 후에야 움직여도 움직여야 한다. 나종관(羅宗冠)… 이 자가 계획대로 준비해 두어야 할 텐데…)
나종관(羅宗冠)이라면 양만화를 대신해 산서상인연합회의 오대수장 중 한 명이 된 인물. 신검산장에 들어왔다가 망신을 당하고 쫓겨 갔던 나충일의 부친이다. 헌데 무엇을 계획대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일까?
철저하게 준비해왔던 계획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음습한 음모가 중원 곳곳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맞물려 진행되고 있었다.
(제 73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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