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돕는 방법, 생각해본 적 있나요?

[서평]시각장애인을 돕는 올바른 방법 <함께 보면 보여요>

등록 2005.11.14 11:16수정 2005.11.1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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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각장애인을 돕는 올바른 방법, <함께 보면 보여요>

시각장애인을 돕는 올바른 방법, <함께 보면 보여요> ⓒ 황금가지

시각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뭔가를 사들고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왔는데 웬 남자가 엘리베이터 반대편의, 게시글이 붙어 있는 쪽 벽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연예인 홍석천을 닮은 세련된 차림의 그 남자는 내 기척을 느끼고는 내게 엘리베이터 위치를 물어왔다. 자신은 시각장애인이고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엘리베이터 위치를 익히지 못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나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튀어나온 말이 "이쪽으로 오세요"였다. 세상에, '이쪽'으로 오라니. 그가 내 목소리를 듣고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 앞이 아니라 내앞으로 오면 어떻게 하나?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면? 팔을 잡고 끌어야 할까? "아니오, 이쪽으로… 아니, 왼쪽, 아니아니, 조금 더…"하며 마치 눈 가리고 술래잡기놀이라도 하듯 쩔쩔매야 하나?


그가 '이쪽'으로 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의 목소리만으로 정확히 엘리베이터 앞에 와서 섰다. 그리고는 자신은 10층에 사는데 얼마 전까지 두 건물 너머의 오피스텔에 살았으며 그곳에서는 엘리베이터 위치를 잘 알았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익숙하지가 못하다고,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의 층과 내 층의 번호를 누르고, 다음 번 문이 열릴 때 내리시라고 말한 후 내 층에서 내렸다.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면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직 방향에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닐까? 그의 집 현관까지 안내해 주었어야 했을까? 그러고 보니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배운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시각장애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함께 보면 보여요>는 그러한 정안인(비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시각장애인을 돕는 기초적 방법에 대한 안내서이다. 저자 또한 1급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정안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섬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다르게 생활하는 것처럼 시각장애인도 정안인과 다른 생활양식과 문화를 지닐 뿐이라고 말하며 이 책을 통해 정안인과 시각장애인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한다. 시각장애인을 돕는 24가지 방법들마다 산뜻한 그림설명이 함께 있어, 어린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기에도 좋다.

정안인들의 일상에서는 자연스레 포착하기만은 어려운 '시각장애인을 돕는 법'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 길 안내를 할 때에는 시각장애인의 팔을 살짝 잡아서, 시각장애인이 안내자의 팔꿈치를 잡을 수 있도록 할 것 (기본안내법 자세라고 한다)
- 위험할 수 있으니 방문이나 차 문을 열어주지 말고 손잡이에 손이 닿도록 안내할 것 (생각없는 친절이 해가 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 시각장애인의 물건을 말없이 옮겨놓지 말 것 (특히 정돈해 준다면서 여기저기 옮겨놓는 행동은 금물이다. 위의 사례보다 더 심각한 ‘해로운 친절’이다)
- 안내견이 사랑스럽고 대견하더라도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지 말 것 (안내견의 주의가 분산되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 시각장애인을 돕고 싶을 때에는 먼저 의사를 물어볼 것 (상대방을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



이제는 또다른 시각장애인이 엘리베이터의 위치라든가 길을 물어본다면 전보다는 좀더 유연하게, 그리고 좀더 도움이 되도록 안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책 읽는 것 못지않게 모으는 것도 좋아해서 대개는 한 번 읽고 다시 보지 않게 되는 책이라도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는 편이지만 이 책만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한 번 더 읽고 동네 도서관에 기증해야겠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정안인'들이 읽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함께 보면 보여요 - 시각 장애인을 돕는 올바른 방법

조남현 지음,
황금가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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