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보내오신 고구마 박스.주경심
시골에서 고구마 한 박스가 부쳐져 왔습니다.
딸에게 주는 것이라면 쌀 한 톨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는 부모님답게 박스를 칭칭 동여맨 노끈에는 육십 년 어부만의 노하우가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고구마를 보자 회가 동한지 배가 고프다며 방방 뛰어대는 아이들을 위해 우선 가장 굵은 놈으로 두 개를 썰어 튀김 옷을 입혀서 기름에 튀겼습니다. 그리고 윗집, 옆집 문을 두드려 이웃을 불러 모아 커피 한 잔을 벗삼아 나누어 먹었습니다.
입 안에 들어간 고구마는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지만 공으로 받아먹었다는 죄송함 때문인지 먹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자꾸만 무거워져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드린 것도 없이 받기 만하는 이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뜨겁다고 "호호 후후" 고구마를 불어 대는 아이들은 오만 가지 표정으로 제 마음의 짐을 덜어 주었습니다.
제가 살던 고향집에서는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는 이맘때쯤, 봄에 심어 놓은 고구마를 수확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고향 들머리에 있는 밭에서는 해마다 고구마 농사를 짓습니다. 늙은 부모님은 또 며칠 해를 등에 업고 그 많은 고구마를 캐셨겠지요.
어릴 적 고구마 캐는 날이면 하나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가난한 집의 딸이던 저였지만 그날만은 맥없이 기분이 좋아지곤 했습니다. 고구마 순을 일일이 거둬 내고, 누렁이가 쟁기질로 갈아 엎은 이랑에서 고구마를 줍는 일은 유난히 체구가 작았던 제게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날이 좋았던 건 주워 올리는 고구마 중 제일 맛나게 생긴 녀석을 두 개도 좋고, 세 개도 좋고 제가 배가 부를 때까지 호미 등으로 착착 깎아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가끔은 다 먹지도 않은 고구마로 돌팔매를 던지는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