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비를 맞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장옥순
내 육신의 나이는 늦가을 끝자락이 아닐까 한다. 고운 단풍잎은 자랑하던 지난 가을을 음미하며 서리를 맞아 바스락대며 메말라가는 나무들처럼, 나목의 시원함을 기다리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힘들게 일해 온 뿌리를 쉬게 하는 나무처럼, 그렇게 빈 겨울을 기다리며 욕심없이 서 있는 나무를 보는 즐거움을 사랑한다.
3년을 살아온 이 산골분교의 시간도 늦가을의 몇 잎 남은 단풍잎만큼 시간이 남았다.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서 깊어가는 밤과 친구하며 책을 읽던 즐거움과 부수적으로 따라오던 글쓰는 즐거움까지 선사해 주었던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두 권의 에세이집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변신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을 준비하는 그 홀가분함을 즐기는 것이니 내면의 소리에 더 민감해진다는 뜻이다. 그것은 홀로 찾아온 이 세상을 다시 홀로 떠나는 준비를 하는, 지극히 숭고한 기다림이다.
한여름 같은 뜨겁던 정열대신 잘 익은 김치처럼 곰삭아서 깊은 맛을 낼 줄 안다는 것이 아닐까? 겉절이 김치처럼 한 순간 쌈박한 입맛을 내는 맛이 아니라 두고두고 감칠맛을 내며 은유와 여유로 삶의 순간을 채색하는 일이라고.
겨우 낱자를 읽으며 글을 깨우치던 우리 1학년 꼬마들이 의젓하게 문장으로 된 일기를 쓰게 되고 어린 티를 벗으며 내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저 아이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새로워지는 일이다. 그들은 이제 막 눈을 뜬 새봄인 것이다. 마치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가 단조 제 1악장처럼 종종대며 앞을 보고 뛰고 내달리며 새잎을 내는 즐거움으로 나이를 먹는 아이들.
오늘은 아이들과 계절 공부를 했다.
"어떤 계절을 제일 좋아하지요?"
"예, 선생님. 저는 겨울을 제일 좋아합니다."
"아니, 왜? 선생님은 추워서 덜 좋은데..."
"겨울에는 눈이 와서 좋아요. 빨리 겨울이 오면 좋겠어요."
"그래요? 겨울이 오면 선생님은 여러분과 헤어지는 날이 금방 오는데…."
"그럼, 겨울이 천천히 오면 좋겠어요."
금방 내 마음을 다독이는 귀여운 꼬마들 때문에 내 나이는 잠시 주춤거리고 서 있었다.
요즈음 부쩍 글씨도 예쁘게 쓰고 받아쓰기에서 곧잘 만점을 받는 아이들 덕분에 즐겁다. 다 써 놓고도 띄어쓰기 하나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 글씨를 예쁘게 써서 스티커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낑낑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물 속에서 뿌리를 낸 고구마 순을 보던 찬우가, '이상하네? 흙이 없는데 어떻게 싹이 났지?' 하며 혼자 중얼거린다. 나에겐 아무런 신기함이 없는 아주 일상적인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모두 대단한 발견인가 보다.
나이 먹는 즐거움은 아이들처럼 단순해지는 일이다. 쉽게 감동하고 얼른 포기하고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파리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나무처럼 자식들을 놔주는 일이고 일거리를 줄여가는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 일은 즐거운 버림이다.
덧붙이는 글 | 비움의 계절 앞에서 잠시 서성입니다. 아이들의 자람이 내 비움의 자리만큼 커진다고 생각하니 내 빈 자리가 아쉬움이 아니라 기쁨을 채우는 그릇이 됩니다.
<한교닷컴> <웹진 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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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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