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라!”
장판수가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미리 주어 손아귀에 쥐고 있던 짱돌을 하나씩 정확히 하인들의 이마에 던졌다. 하인들은 정통으로 돌을 맞은 채 이마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장판수는 하인이 놓친 몽둥이를 주워들고 주위를 살폈다. 객잔에서 뛰어나온 자들은 어림잡아 십 여 명쯤 되어 보였고 장판수가 그들을 모두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짱대 이 자식, 결국 오지 못하는 건가!’
장판수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 숨을 곳을 찾았지만 돌에 맞은 하인들이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머리를 잡고 나 뒹구는 하인들을 보며 장판수는 일단 숨기보다는 그 일대에서 빠져 나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무조건 객잔을 등진 채 뛰어 나갔다. 잠시 뛰어가던 장판수는 눈앞에 사람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고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손에 쥔 몽둥이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가.”
장판수 앞에 버티고 서서 중얼거리는 이는 객잔주인이었다. 장판수는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여기서 자네를 받아들이기 위해 전에 없이 공을 들이는데 이게 무슨 패악질인가. 내 얘기를 잘 들어 보아라. 전란이 끝나고 왜막실(임란 후 항복한 왜군이 모여서 살아간 마을)에서 저들을 만나고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의미로 사금파리 조각 하나를 받아 들였지.”
객잔주인은 칼 하나를 높이 들어 장판수의 발아래 툭 던져 놓았다.
“그 사금파리의 의미가 뭔지 아는가?”
장판수는 객잔주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않은 채 발 아래 떨어진 칼을 내려다보았다. 객잔주인은 달빛 아래에서 하얀 이를 한껏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말이 없는 것 보니 긴 소리 할 것 없이 칼로 얘기하자는 것인가? 여기서는 칼 소리가 울려 쓸데없는 구경꾼이 끼어들 수 있다. 나를 따라와라.”
객잔주인은 몸을 돌려서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장판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쩐지 자리를 피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거란 느낌이 들어 칼을 들고 그를 쫓아가 보았다. 나무사이를 헤치고 둔덕에 있는 외로운 무덤 앞에서 객잔주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자, 이제 그 칼 솜씨 한번 보자. 대체 어느 정도 이기에 저들이 당신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는지 말이다.”
장판수는 칼을 뽑지 않고 칼집을 아예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이보라우...... 늙은이!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내래 칼을 잡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바이고 그쪽과 싸울 이유도 없다우. 이진걸과 팔모가지 잘린 부하의 일은 내 깊게 사죄하겠네만 윤계남이는 내 절친한 친구였으며 오랑캐들과 싸우다 죽었으니 오해 마라우.”
“내 이름은 평구로라고 한다. 장판수 자네가 지금 싸우고 말고는 내게 달려 있으니 어서 칼을 집어라. 은원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
장판수는 천천히 한숨을 길게 내어 쉰 후 칼을 다시 집어 들고 천천히 칼을 뽑아 보았다. 손잡이가 가오리 가죽으로 된 귀한 칼에 글자 하나가 달빛을 받아 옅게 희번뜩 거렸다.
‘飛(나를 비)’
“그 칼은 너를 죽이고 다시 돌려받을 것이다.”
평구로가 예의 그 특이한 어조로 중얼거렸고 장판수는 칼을 불끈 움켜쥐고 다리를 양 옆으로 넉넉히 벌린 채 오른 다리를 뒤로 뻗었다. 평구로는 머리 위까지 칼을 치켜들고 신속히 서너 걸음을 전진하여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장판수의 머리 한가운데를 가격 했다.
-쨍!
평구로의 일격을 막아낸 장판수는 손목이 시큰 거렸지만 이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평구로의 공격은 같은 부위에 계속되었고 장판수는 뒤로 두어 발자국을 물러서며 이를 막아내었다. 평구로는 칼을 비스듬히 눕혀 장판수의 손목을 노렸다.
“이크!”
장판수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뒤로 크게 물러섰고 그 바람에 등이 나무와 맞닿고 말았다. 평구로는 칼을 곧게 뻗고 기합소리와 함께 방비가 흐트러진 장판수를 힘껏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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