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에서라도 꽃을 피워야 했어요장옥순
11월17일자 무등일보는 '무겁고 고된 삶'을 살아왔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별거로 누나와 단둘이 살면서도 미술에 천부적 재능을 보인 A군은 그가 가난 속에서도 한 가닥 꿈을 지폈던 '예술고'진학이 좌절되자 끝내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하루 세끼 중 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 이외에는 나머지 끼니는 거의 굶다시피 하며 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한 쪽에서는 APEC 정상화담을 축하하며 몇 억짜리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세상에 그늘진 한 쪽에서는 지겹도록 가난한 환경과 가정불화의 덫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현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1897년에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이란 희생자가 스스로 행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어떤 행위에서 비롯되고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죽음이란 것을 스스로 아는 경우를 말 한다"고 정의내렸습니다.
2003년 9월 25일자 국무총리실 청소년 보호위원회 보도자료에 의하면, 나이별 사인(死因) 특징을 보면 20~30대에서는 자살 순위가 2위로 다른 사인보다 상대적으로 높으며, 1992년 청소년 사망자 사인 중 자살이 9.4 %를 차지했으며 2001년에는 15.9%나 됐다고 합니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의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안타깝게도 청소년 자살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청소년의 자살 충동 원인의 63.9%는 학교 성적비관이라는 통계수치에 주목해야 합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의 1998년과 2002년 자살환자 분석 결과는 청소년 자살 환자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보여줍니다. 청소년 자살환자의 약 87%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적 증상이나 문제가 있었고 특히 우울증이 전체의 66%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변화가 심한 시기이며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므로 충동적인 행동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쟁위주의 교육체제, 가정의 해체를 비롯하여 경제적 빈곤, 교우관계, 우울증 등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게 하는 요인은 참으로 많습니다.
수능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올해만은 마음 아픈 사건들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무도 자신의 생명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포기할 수 없다는 인간의 가장 존엄한 가치를 우리의 청소년들이 마음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수능 시험도 살아가는 한 과정임을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니 상처와 아픔을 시간에 맡기고 또 다른 삶을 살다보면 자신을 통제하는 멋진 청소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부디 자신을 사랑하는 어버이 앞에서 생명을 주신 어버이에게 평생 피눈물로 살아야 하는 고통과 아픔을 안겨 드리지 않는 지혜로운 선택으로 자신을 이기는 일이 가장 성공하는 길임을 가슴에 새기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부모의 이혼으로 아픈 청소년기를 보냈고 경제적 빈곤으로 학교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 했음을 고백합니다. 내 아픈 상처를 드러내어 단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옹이로 남아있는 아픈 상처마저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포기해야 할 만큼 극한의 외로움과 절망과 싸웠을 한 영혼이 초겨울 날씨 속에 싸늘하게 식어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6년 동안이나 부모의 별거로 힘들게 살아온 그가 견디어 온 시간이 결코 적지 않음을 생각하니 왜 죽어야 했냐고 다그치기 전에 연민이 앞섭니다.
자실을 옹호하거나 동정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를 누가 벌할 수 있겠습니까? 신문 한 귀퉁이에는 그가 그린 인물화가 사진처럼 실감나게 실려 있어서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결코 범상한 솜씨가 아님을 생각하니 일찍 삶을 접은 화가 지망생이 다음 세상에서는 슬픔과 좌절, 배고픔 없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그를 보낸 누나의 아픔도, 그의 친구들까지도 이 겨울이 참 힘들 것입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15세의 중학생이니 곁에서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에 홀로서기의 힘듦을 혼자 감당하려다 무릎을 꿇어버린 그의 너무 슬픈 죽음 앞에 어른으로서, 교단에 서 있는 자로서 부끄럽고 미안해집니다.
몇 잎 남지 않은 늦가을의 나무들이 나목으로 서 있을 준비를 합니다. 이 세상에 헛되이 태어나는 생명을 하나도 없다는 데, 스스로 버린 귀한 생명 앞에 한숨만 나옵니다. A군의 슬픈 영혼이 편안히 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를 가르치며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일보다, 힘들 때 주저앉고 싶을 때 어떻게 자신을 추슬러야 하는지를 먼저 가르쳐야 함을 생각하며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촘촘해질 수 있도록 어른들이 각성해야겠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청소년의 생명포기 현상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 안전 시스템이 가정과 학교, 사회에 폭넓게 펼쳐져서 소중한 싹들이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11월17일자 무등일보를 읽고 마음이 아파 글을 올립니다. 우리 사회의 허술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어느 계절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벽앞에서 스스로를 버린 한 영혼의 안식을 빕니다.<한교닷컴>과 <웹진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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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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