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 "정율성 화순 능주 출생설은 오류"

화순군, 정율성 태생지 '광주 불로동'으로 잠정 결론

등록 2005.11.25 12:04수정 2005.11.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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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의 화순 능주 관영리 출생설은 일부 논자들과 언론매체에서 호적대장과 학적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하지 못해 초래된 오류로서 정율성은 호적상으로 볼 때 광주 동구 불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중국 3대 음악가로 추앙받는 정율성(1914~1976)의 출생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화순군이 자체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정율성의 출생지를 화순이 아닌 광주로 잠정 결론 내려 관심을 끌고 있다.


화순군은 광주광역시 남구 주관 제1회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를 앞두고 정율성 출생지가 화순 능주 관영리일 가능성이 크다는 광주광역시 남구의회 유순남 의원의 주장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해왔다.

군은 10월 25일부터 지난 15일까지 20일간 문안식 조선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와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이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정율성 화순 출생설’을 집중 조사했다.

중국의 인민음악가로 추앙받은 정율성 선생의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한편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군은 조사 결과 보고서 형식의 책자 <정율성 선생 탄생지 조사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보고서는 조사 개요, 정율성의 주요 약력, 화순출생설 검토, 정해업 및 정율성의 능주행적, 유적지 복원 및 현창사업 방안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 정해업의 광주 동구 불로동 토지대장과 호적등본, 동구 금동 호적, 정율성의 능주초등학교 학적부, 정율성의 친필 사본, 정설송 여사의 서한 등의 자료를 첨부했다.


보고서는 ‘화순출생설의 진위(眞僞)’에서 정율성의 ‘화순 능주 관영리 출생설’은 일부 논자들과 언론매체에서 호적대장과 학적부 등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해 생긴 오류라고 지적한 뒤 정율성은 광주에서 태어났다는 2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정율성(본명 鄭富恩)은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17년(大正 6)부친을 따라 능주 관영리로 이주, 1922년 광주로 이주할 때까지 아버지인 정해업(鄭海業)의 슬하에서 대가족을 이루며 거주했다고 밝혔다.


정율성이 광주에서 태어났다는 근거는 ‘구 호적대장’ 등에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지만 다음 두 가지 사실은 그의 출생지가 광주라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일제시대에 작성된 광주부 호적에 따르면 정율성의 장형(長兄) 정효룡의 큰 아들인 정상훈이 1916년 12월 광주 동구 부동정(현재 불로동)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있는 데다 일제시대 능주면의 호적에도 정상훈이 아버지 정효룡과 함께 할아버지 정해업의 호적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이는 정상훈이 태어난 1916년 정해업은 자식들을 분가시키지 않고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었고 능주 관영리로 이사할 무렵에도 함께 이주한 사실을 의미한다고 했다.

즉 정율성은 호적상으로 볼 때 광주 동구 불로동에서 1914년 7월에 태어났으며 1916년 12월 같은 장소에서 정상훈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정율성이 광주에서 태어났다는 두 번째 근거는 둘째 누나 정봉은(鄭奉恩)의 학적부에서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 누이는 1918년 4월 1일 능주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이전에 광주수피아여학교 1학년을 수학한 사실이 학적부에 남아 있다는 것.

이처럼 둘째 누나의 학적 변동 사항은 정해업 일가의 능주 이주와 일치하며 정율성이 능주 관영리에서 태어나지 않고 광주에서 태어난 사실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정해업 및 정율성의 능주 행적

보고서는 ‘정해업 및 정율성의 능주행적’에서 정해업은 자식 외에도 손자까지 포함한 대가족을 이끌고 능주로 이주했다며 정해업이 화순 능주로 이주한 것은 가난을 벗어나 자식들을 잘 가르치려는 일념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해업 일가는 1922년~1923년 무렵에 다시 광주 금계리로 거처를 옮기는데 정율성도 부친을 따라 다시 광주로 이사, 전학을 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또 정율성의 바로 위의 형인 정의은(鄭義恩)의 학적부에 따르면 주소가 금계리(錦溪里, 현재 광주시 동구 금동)이며 1923년 4월에 입학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정율성도 이때 광주 금계리로 이주, 전학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정해업이 1922년 6월, 능주 관영리 283번지 소유권을 한용모에게 넘겨준 것으로 볼 때 정해업 일가는 이 무렵에 광주로 이주하게 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율성이 부친인 정해업의 슬하에서 능주에 거주한 시기는 1917년부터 1922년 ~1923년 무렵까지 6~7년 정도이며 그의 나이 4~10세 정도의 유년기를 능주에서 보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

보고서는 정율성 유적지 복원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율성 탄생지 조사 결과 화순 능주 관영리 출생설은 근거가 약해 정율성은 광주에서 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광주 출생설을 강조했다. 따라서 현재 광주 남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정율성 생가와 유적지 복원, 그리고 기념사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비어있는 능주 관영리 283번지 집은 정율성이 유년기를 보냈던 집인 만큼 초가를 복원하는 형태로 광주 남구와 동구 등과 함께 연계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율성 출생지 논란의 발단은 광주 남구청이 광주 남구 양림동 79번지를 생가로 지정한 뒤 생가복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을 때 유순남 남구의회 의원이 ‘정율성 능주 관영리 출생설’을 처음으로 제기, 출생지 논란의 불을 지폈다.

유 의원은 다시 정해업의 광주 동구 불로동 토지소유관계 문서를 발견, 정율성의 출생지는 광주 불로동일 가능성이 크다며 ‘능주 출생설’을 뒤집었다. 더욱이 하동정씨 대종회도 정율성의 출생지는 동구 불로동이라고 주장했다.

제1회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앞두고 열린 한중기자회견에서 정율성의 딸인 정소제 여사는 아버지의 친필 이력서와 어머니 정설송 여사의 증언 등을 소개하며 광주 양림정이 아버지의 출생지라고 거듭 확인했다.

광주 남구청장도 당시 공문서는 일제시대 때 자료로서 불명확하다며 살아 있는 가족의 말이 정확하다고 주장, 광주 양림동의 출생설을 강조했다.

화순군은 유순남 의원이 능주 관영리 출생설을 제기하자 정율성의 능주 호적대장과 학적부, 광주 동구 불로동 등에 대한 자체 조사를 한 끝에 광주 동구 불로동을 정율성의 태생지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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