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S정신병원의 인권유린

등록 2005.11.25 15:28수정 2005.11.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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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이미지 컷 1
정신병원 이미지 컷 1국가인권위
"정신병원이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나요.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다룰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병을 치료하러 갔다가 오히려 병을 더 키운 꼴이 되고 말았어요."

2004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S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김모씨(35·여)는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럽다"며 고통스럽게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 나갔다. 2시간 남짓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그의 체험기를 들으며, 정신병원이야말로 우리 사회 인권의 사각지대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이 아니었으면'하는 바람으로 몇 번씩 되물을 때마다, 김씨는 "더 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는다"며 정신병원의 인권유린을 폭로했다.

평소 숙면을 취하지 못하던 김씨는 2003년 12월 첫아이를 낳으면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아무리 잠을 자려고 노력해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려니 신경은 더욱 예민해졌다. 김씨가 오빠의 권유로 정신병원을 찾은 것은 불면증 때문이었다. 그냥 며칠 쉬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아기를 낳은 지 불과 두 달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김씨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보호실에 감금됐다. S병원에서 보호실은 최초 입원환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환자들은 이곳을 '창고'라 부른다. 병원측은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한 치료과정이라고 말하지만, 환자들에겐 방치나 다름없는 격리조치다. 일단 창고에 갇히면 나올 때까지 얌전히 지내야 하는데, 답답한 마음에 큰 소리로 떠들다가 손발과 가슴을 묶인 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이틀 만에 '창고'에서 병실로 옮긴 김씨는 좀처럼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번은 새벽녘에 화장실에서 동료 환자와 잡담을 나누다가 '예전에 S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문'에 대해 동료 환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때 우연히 반장 환자 중에서 잡무 등을 처리하는 일종의 도우미 이 이들의 얘기를 엿들었고, 곧이어 병원 직원들이 김씨의 손발과 가슴을 차례로 묶었다. 이른바 'RT 강박조치'를 당한 것이다. 김씨는 꽉 조인 손발이 너무 아파 울면서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럴수록 강박은 더욱 심해졌다.

병원측은 출산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김씨의 양팔과 두 다리를 묶어 열십 자(十) 모양으로 고정시키고,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가슴을 압박하는 조치까지 취한 것이다. 김씨는 2주 동안 모두 10회에 걸쳐 강박 및 보호실 격리 치료를 받았는데 40시간 이상 강박된 경우도 두 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강박 사유는 주로 환자들의 수면을 방해할 정도로 떠든다는 거였다. 강박이 계속되다 보니 출산 이후 생긴 허리통증이 재발했고 불면증은 더욱 악화됐다. 김씨는 "한마디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정신병원 이미지 컷 2
정신병원 이미지 컷 2국가인권위
김씨는 강박조치가 풀리자 아기가 보고 싶어졌다고 한다. 몸이 힘들더라도 아기와 함께 지낼 걸 괜히 입원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병원측에 아기를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병원측은 "규정상 2주가 지나야만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 한번은 환자들이 만든 장미꽃을 보고 "엄마에게 달아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은 한 간호사는 "내년 어버이날까지 입원해 있다가 달아 주라"며 김씨에게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동료 환자들의 고단한 삶이 김씨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별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10년째 병원에 머물고 있는 사람, 목욕할 때마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얻어맞아 온몸이 시퍼렇게 멍든 노인, 자식뻘 되는 직원에게 듣기 민망한 욕설을 듣고도 한마디 대꾸도 못하는 환자…. 김씨는 이때부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방송 등을 통해 들어온 국가인권위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입원한 지 2주일이 지나 김씨는 가족을 만났고 곧바로 퇴원했다. 2주일 만에 재회한 아기는 엄마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아기 키우는 재미에 빠지면서 김씨는 정신병원의 공포를 차츰 잊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정신병원의 기억을 아예 지워 버리기 위해 가족에게도 병원에서 겪은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가족은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아서 김씨의 몸이 좋아진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김씨의 불면증이 재발하자, 가족은 또다시 김씨의 입원을 서둘렀다. 김씨는 죽기보다 싫은 정신병원이었으나 입원말고는 달리 어찌 해볼 방법이 없어 가족의 결정을 따랐다고 한다. 잠든 아기 곁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쓴 것이 그 나름의 처절한 저항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왜 또 그 병원으로 갔는지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입원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에게 모든 사실을 얘기하지도 못하고, 맥없이 억울해 하는 내 모습에 화가 치민 거죠. 그래서 내가 비록 고통을 받더라도 병원의 문제점은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쓴 겁니다."

두 번째 입원도 첫 번째와 똑같은 순서로 진행됐다. 김씨는 창고에 갇히자마자 "국가인권위에 진정하고 들어왔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김씨의 몸을 더 팽팽하게 묶었다고 한다. 창고에서 나온 뒤에는 다른 환자와 반장이 다투는 것을 참견하다가 또다시 열십 자(十)로 사흘간 강박을 당했다고 한다. 반장이 환자를 부당하게 몰아세우는 것을 보고 "이러면 안 된다"고 말참견을 한 것이 강박조치의 이유였다.

한편 김씨의 편지를 진정사건으로 접수한 국가인권위는 S정신병원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S정신병원이 환자를 격리·강박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는 2005년 7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철저한 관리감독을, S정신병원측에는 격리·강박 개선방안 마련과 직원인권교육 실시 등을 권고했다.

2005년 가을 김씨의 몸은 몰라보게 좋아져 있었다. S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는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10월 중순에는 병 치료 때문에 늦춰진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결혼식에는 22개월 된 아들도 함께했다.

"이런 게 사는 재미인가 싶어요."
김씨는 자신의 몸을 회복시켜 준 곳은 '병원'이 아니라 '집'이라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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