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생각하며 겁나게 잘살아라!"

[편지] 사랑하는 후배 숙희의 결혼식에 부쳐

등록 2005.11.25 16:00수정 2005.11.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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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겁나게 잘 살아라! 숙희야!"

"겁나게 잘 살아라! 숙희야!" ⓒ 조숙희

농부의 딸 숙희야. 결혼 준비에 눈썹이 휘날리겠구나. 너와 처음 알게 된 8년 전을 생각한다. 주마등처럼 수많은 추억이 떠오른다. 함께 떠났던 여정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함께한 이들. 우리 모두 흩어지지 않고 참으로 살갑게 오늘까지 왔구나.


네가 모임에 처음 들어 왔을 때, 너의 밝은 웃음과 긴 다리는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너는 보조개가 살포시 들어간 미소로 모든 이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긴 다리만큼 뚜벅뚜벅 억척스럽게 맡겨진 일들을 풀어나갔지.

모두가 힘겨워하는 시기에 모임의 대표를 맡아도 언제나 웃으면서 궂은일을 도맡기도 했지. 또 선배가 부르면 술자리도 마다않고 나와서 분위기를 맞춰주고 늦은 시간 웃으며 배웅하던 모습도 떠오르는구나.

그러던 네가 나이가 차서 이제 결혼을 한다고 하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고 한편으로는 아쉽다. 과년하지 않고 적당한 시기에 짝을 맺는 것이 반가움이고 전처럼 농부의 딸을 마음 편히 불러낼 수 없기에 그렇다. 그래도 아쉬움보다 기쁨이 더없이 크다.

네가 얼마 전 결혼 준비를 하면서 엄마에 대해 써놓은 글을 모임 홈페이지에서 읽었다. 너의 마음 씀씀이와 모녀의 애틋한 정을 엿볼 수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너의 효심과 어머님의 자식사랑은 결혼 후에도 변함없으리란 믿음이 생긴다.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숙희의 글

주말에는 엄마랑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어찌나 피곤하고 귀찮은지. 그럭저럭 다니고 일요일 저녁 하얀 봉투에 만원짜리가 든 봉투를 건네주시면서 엄마가 모은 돈이시라면서 주시더라구요.

20살에 시집와서 30년을 넘게 집안일 하시면서 개인 돈 만원도 만져보지 못하구 경제권이 없이 평생 사신분이. 한 봉투 모으려고 5년을 어떻게 모았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그 자리에선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이부자리에 누워서는 펑펑 울었습니다. 월요일 출근하는데 전철에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홀로 시골에 내려가실 엄마를 생각하니 너무나도 불쌍해서. 업무 시작은 현금관리부터 하는데, 만원짜리를 세는데 엄마가 주신 금액이랑 똑같이 떨어집니다. 또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집에 전화해도 엄마는 안계시고 어딜 가셨는지. 집엘 내려가셨는지. 울며불며 조퇴하구 엄마 찾으러 집으로 갔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 빨래까지 널어놓으시고 편지 한 장 남기고 가셨습니다. 무능한 애미를 용서하라구.

정말 너무 하신다. 화가 나서 펑펑 울고 나서 혹시나 해서 고모가게에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아직 안가시고 그곳에 계시더라구요. 아무렇지 않게 수다 떨다가 버스 태워 보내는데, 한참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단, 며칠간의 자유에서 다시 집으로 내려가셔서 고생하실 거 생각하니 떠난 버스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내가 시집가면 우리 엄마 누가 도와줄까 생각하면 왜 결혼을 해야 하나 싶어요. 우울해집니다. 즐거워야 하는데. 우울해지고 엄마가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행여나 제 싸이에 오시거든 울 엄마에게 친하게 대해주세요. 벗이 되어 주세요. 아는 체 해주는 작은 관심에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 있게...


다시 읽어도 애이불비하다. 다행이 어머님이 시쳇말로 ‘싸이질’ 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빙긋 웃음이 번진다. 그래, 네 부탁대로 많은 이들이 어머님의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숙희야! 어머니 생각해서 아름답게 살아라. 인생 선배로서, 모임 선배로서 네게 해줄 말의 전부다. 전부가 요것밖에 되지 않아 나 역시 섭섭하다만 아름다움 안에 내재된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다.

산을 사랑한 농부의 딸 숙희야! 산을 오를 때 힘겨움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지혜 또한 알고 있겠지. 힘겨울 때는 잠시 쉬어가고 하산할 때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상상해 보렴. 그런 삶을 반려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참! 옆지기 될 사람은 산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설령 좋아하지 않더라도 너 홀로 달랑 산에 가지 말고 같이 다니렴. 부부가 함께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축복 중에 하나다. 작은 일도 함께 상의하고 큰일은 함께 기도하며 다가서는 날들을 행복하게 잘 살려무나.

강릉에서 결혼한다고 하니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그 곳 사람들은 예식이 끝나면 신랑을 바닷가로 끌고 가서 매단다고 하던데, 신랑이 몸 성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한다.

신혼여행지가 어디인지는 모르나 여정 내내 벌꿀 같은 감미로움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건강해라. 우리가 만난 지 8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80년을 더 볼 수 있으니 그동안 무조건 건강하자. 결혼식 참석 못해 미안하구나. 이 글로 그 미안함을 대신한다. 성호선배가.

a 후배 다경이가 직접 만들어 온 결혼 축하 케이크

후배 다경이가 직접 만들어 온 결혼 축하 케이크 ⓒ 조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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