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영화 포스터자료사진
1990년대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두 번째 임신 중 병원측에서 실시한 HIV 항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병원측은 가족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가족회의 결과 그 여성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해외로 입양 보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기는 HIV 음성이었다. 이 여성이 바로 지난 2002년 여수 에이즈 사건으로 유명한 HIV 양성인 K씨이며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실제 주인공이다.
정신지체 3급 수준의 지능을 가진 장애 여성 K씨는 우리 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한 인생을 살아왔다. 부랑자인 첫 남편은 그에게 티켓 다방에 나가 성매매로 돈을 벌어올 것을 강요했고, 두 번째 남편과는 비교적 행복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진 빚 200만원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 인신매매를 당했기 때문이다.
여수의 집창촌에 갇혀 돈이라고는 한푼도 만져보지 못한 채 매일 낮밤 남성을 받아야 했던 K씨. 마침내 여수를 탈출하여 다방을 하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불안한 생활을 영위하던 중 또 다시 인신매매범을 만나 K씨는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되었다. 그 인신매매범이 K씨를 인천의 집창촌으로 팔아넘기는 데 실패하자, 보건소에 고발했던 것이다.
보건소 공무원들의 행동은 인신매매범보다 더 잔혹했다. 이들은 K씨를 구타하고 팔을 비틀어 수갑까지 채워 경찰서로 데려갔다. 경찰들은 K씨를 '긴급체포'했다. 이때 생긴 상처가 K씨의 손목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공무원들이 억지로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사법권이 없는 공무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그러고선 언론사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섹스에 미친 여자!"
"에이즈 복수녀!"
나아가 여수시장은 K씨의 사진을 시내 광장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잡지사 기자가 K씨의 남편을 취재하곤 K씨와 남편이 사는 마을 주소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이렇게 규정했다.
"마녀사냥이다."
여수 에이즈 사건의 진실 - 마녀사냥
지난 10월 22일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 이하, 인권모임 인터넷 사이트에 'kcs53'이란 아이디를 사용하는 HIV 양성인이 하소연을 올렸다.
"이들은 전부 도둑놈들입니다. 의사가 아니에요. 전부 장사꾼이고, 사기꾼들입니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이렇다. 담석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들이 사전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HIV 항체 검사를 해버렸고, 이 과정에서 양성 반응이 일어나자 수술은커녕 AZT 등 에이즈 약을 복용시켰고, 환자의 가족에게 "에이즈에 걸렸다"라고 말해 버린 것.
이 또한 당사자의 허락을 받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의 이 같은 의료행위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생활 보호 침해와 관련된 것으로 의료면허증을 박탈당할 수 있는 대단히 심각한 범죄다.
문제는 이러한 인권침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HIV 양성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데 있다. 병원에서는 일방적으로 HIV 검사를 실시하며, 단 한 차례 양성 반응이 일어나도 이른바 에이즈 환자로 단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