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고려의 마지막을 붉게 물들였던 개혁군주

"나는 한 번도 개혁을 포기해본 적이 없다" 이기담, 공민왕과의 대화

등록 2005.11.29 18:30수정 2005.11.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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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이 약하고 외세의 입김이 강한 사회, 부패하고 정체된 사회에서 누군가 개혁을 하려고 하면 기득권 세력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고함을 질러댄다. "이게 어떻게 쌓아온 권력인데 절대 내줄 수 없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만의 특권인데 누가 감히 이를 빼앗아가려 하는가." 이때의 기득권 세력들은 대부분 사회의 지도층이고, 이미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지도층 인사인데 직접적으로 ‘내 밥그릇을 내줄 순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들이 주로 내세우는 말은 언제나 일정하다. 이제까지 전례가 없던 일이므로 국가가 혼란에 빠질 것이니 백성을 생각한다면 혼란을 자처하지 마시고 군주의 도리를 다하시오소서.


고려의 마지막을 붉게 물들였던 개혁군주 공민왕도 마찬가지였다. 10년간 원의 볼모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고려의 독립을 위해 개혁 정치를 펴려 했을 때 그에게 가장 큰 장애로 떠오른 것은 원나라가 아니라 원나라에 붙어 기생하려는 기득권 세력층이었다. 호복을 입고 변발을 한 그들은 외쳐댔다. 상국을 사모하여 변발을 했거늘 어찌 감히 변발을 해제하라 하는가. 그들에게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원에 기생해서 얻은 기득권을 잃게 될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이기담, 공민왕과의 대화
이기담, 공민왕과의 대화고즈윈
그런 공민왕과 기득권 세력간의 충돌, 그 와중에 피어났던 왕의 사랑, 사랑이 개혁에 미친 빛과 그림자, 공민왕 개인의 섬세한 예술가적 자질들이 어떻게 어우러져 고려의 마지막을 붉게 물들였는지를 대담형식을 통해 꿈처럼 그려낸 책이 나왔다. 이기담, 공민왕과의 대화.

상상력이란 참으로 묘한 것, 책이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공민왕의 대사 부분에서 그것이 정말 공민왕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미 고인이 된 인물과 현실 인물과의 대화라는 낯선 형식이 독자들에게 공민왕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고려에 공민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굉장한 안타까움을 남긴다. 외세에 억눌려 가난하고 부패한 나라에서 한 군주가 나타나 조국을 제대로 만들어 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는 사실이 몇 백년이 흐른 후 후손인 우리의 가슴 한 켠을 저리게 하는 것이다.

공민왕이 즉위했을 때 고려는 이미 생성된지 사백 년을 넘어 왕조로서는 충분히 장수한 사멸 단계의 국가였다. 여기에 백년 가량 사실상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고려는 그대로 스러져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그야말로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국가였던 것이다. 그런 나라를 공민왕은 어떻게든 끌어안아 살찌우려 애를 쓴다.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교활하게.


그러나 약할대로 약해진 국력에서 그것은 역부족이었고,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신하들의 잇단 배신과 난으로 공민왕은 상처받는다. 예술가적 감수성을 가진 민감한 왕에게 측근들의 배반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였다. 이렇게 상처입은 왕이 마지막으로 신뢰했던 사람이 신돈이고 신돈마저 개인의 욕망으로 치달아가는 모습을 본 왕은 신돈을 제거하게 된다. 신뢰했던 모든 이들과의 이별인 셈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는 왕이지만 주위에 신뢰할 만한 사람 하나 두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권력이란 얼마나 외롭고 허망한 것인가.

공민왕의 개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고려는 그대로 스러져 갔지만 그의 치세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일으킨 개혁의 기운과 신진 사대부들의 기용은 그대로 ‘조선’이라는 새 나라로 이어졌던 것이다. 조선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조상들을 모신 사당에 공민왕의 위패를 둠으로써 암묵적으로 공민왕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밑거름이었음을 암시한다.


타국에 ‘볼모’로 끌려가는 것이 당시에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볼모’로 끌려갔던 왕자들은 대부분 해박한 지식과 개혁성향을 가진 군주가 되어 돌아왔다. 넓은 대륙에 가서 여러 나라의 돌아가는 정세를 접하다보니 자연히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보고 식견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생존했다면 조선을 좀 더 열린 나라로 만들었을, 그러나 비명에 간 ‘소현세자’도 청나라에서 오랜 세월 볼모 생활을 했고 고려의 공민왕도 원에서 10년간 숙위 생활을 한 후 즉위했다. 왕자들의 볼모 생활이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공민왕은 자신의 숙위 기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숙위라는 제도가 굴욕적이고 모욕적이긴 하나, 원 황실에 가까이 있음으로 해서 원 조정의 대신들은 물론 황제인 순제, 그리고 당시 원 황실을 움직이던 권력의 핵심 기황후, 그의 아들이자 황태자까지 나는 모두 가까이 사귈 수가 있었소. 원 황실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들인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가까이에서 내 스스로 보고 알았소. 이는 고려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들이 아니오? 여기에 성리학에 대한 공부 또한 나의 시각을 넓게 만들어 주었소...

이렇게 쌓은 그의 탁월한 외교감각과 기민함, 과단성들은 그러나 후세에 이르면 ‘노국공주’와 ‘신돈’이라는 베일에 가려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우리는 공민왕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노국공주를 잃고 슬퍼하며 무기력해진 왕의 모습이나, 정치를 신돈에게 일임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왕, 혹은 자제위라는 소년그룹과의 동성애를 떠올린다. 부정적인 이미지만 크게 자리잡은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자리잡게 된 이유를 조선이라는 나라의 건국과 연결시킨다. 조선의 출발은 결국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반역이었다. 반역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적절한 사유가 필요했고, 그 사유를 성립시키 위해서는 공민왕을 깎아내리고 우왕이 그의 친아들이 아니었다는 설을 유포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건국세력들은 신돈을 엄청난 요승으로 깎아내리고 공민왕을 ‘동성애자’라는, 현대에도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금기의 영역으로 몰아붙인다. 자제위에 대한 공민왕의 답변을 들어보자.

...이기담: 그렇다면 자제위는 정예군대라는 말씀인가요?
공민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장차 요동 정벌의 선동이 될 젊은 지도자들을 양성한 기구였소. 이렇듯 중한 임무를 생각하다보니 자제위는 궁안에 두었고, 이들에게는 나의 신변을 시위하는 일 또한 자연스레 주어졌소. 이는 나의 친위부대라는 성격상 자연스러운 역할이기도 한 것이오...


요동정벌을 위해 특별히 조직한 정예집단이 조선 건국세력에 의해 갑자기 동성애 미소년 집단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유포된 자제위 동성애설은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공민왕 최대의 치부가 되었다. 역사란 강자의 몫이라고 어느 현명한 이가 말했던가.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공민왕의 말년에 대해서는 충분한 재조명이 이루어져야 공정할 것이다.

원의 여인을 뜨겁게 사랑했으면서도 원으로부터 과감히 독립을 이루었던 공민왕. 개혁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일생은 저물어가는 고려의 화려한 노을이었다. 노국공주가 죽지 않았다면, 신돈이 조금만 자제했다면 어땠을까, 공민왕이 만일 개혁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고려는 더욱더 긴 수명을 이어갔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금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총명했던 개혁군주들이 실패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그들의 성공을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말했던가. 인류의 가장 큰 불행은 그들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고. 이 대담을 듣고 있으면 독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재로 향한다. 의복을 달리 입었을 뿐,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비슷한 맥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대담을 통해 독자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며 씁쓸하게 웃게 될 것이다. 공민왕에게 씌워진 고정적인 이미지를 살짝 젖히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묘미도 따라온다.

공민왕과의 대화 - 미완의 개혁군주, 이야기마당에 서다

이기담 지음,
고즈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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