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포 경수로 공사 현장.KEDO
신포 경수로 사업이 11월 30일부로 사실상 종료됐다. 제네바 합의가 체결된 지 11년, 경수로 사업이 시작된 지 10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그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북한은 사업 종료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고, 미국은 제네바 합의의 파기 책임을 북한에게 넘기면서 이러한 요구를 일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경수로는 시작부터 불안했다. 1994년 당시 경수로 제공 보장을 포함한 제네바 합의에 미국이 서명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199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의를 앞두고 있었던 미국은 북핵 문제의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NPT의 무기한 연장 여부를 결정할 중대한 시점에서 NPT 회원국인 북한이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국 주도의 핵비확산체제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또 한가지 중요한 정치적 계산은 '북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 김일성 주석의 사망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격변기에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북한의 붕괴는 '여부'가 아니라 '시점'의 문제로 바라봤다. 이러한 판단은 '일단 약속은 해주고 두고보자'는 식의 합의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특히 공화당은 경수로 제공이 "악행을 보상하는 것"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었고, 제네바 합의 체결 직후 실시된 중간 선거에서 상하원을 싹쓸이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대선에서 행정부까지 장악하면서 경수로 사업 폐기를 공공연히 거론하기 시작했다.
부시, 북한에 경수로 제공 원치 않아
미국과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경수로 사업이 이 지경까지 된 책임은 북한에게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인 미국은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가 경수로 사업 폐기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지기 훨씬 이전부터이다. 쉽게 말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게 경수로를 제공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이것이 경수로 사업 종료의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경수로 사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94년 이 사업에 대한 북미간의 합의는 북한의 핵무장이나 한반도의 전쟁을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경수로에 대한 북미 양측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94년과 흡사한 상황, 즉 북한의 핵무장이나 한반도의 전쟁 위기에 또 다시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의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마음을 고쳐먹고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동시적 상응조치의 일환으로 경수로 사업을 재개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북한이 경수로를 포기하고 남한의 '중대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것도 아니면 경수로를 먼 미래의 의제로 넘기는 '잠정 타협'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대제안'이 아쉬운 까닭
만시지탄(晩時之歎)이겠지만, 노무현 정부의 '중대제안'은 이러한 맥락에서 커다란 아쉬움을 주고 있다. 노 정부는 6자회담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던 올 봄에 경수로 종료를 전제로 한 남한의 전력송전 방안을 마련했고, 이를 '중대제안'이라고 일컬었다.
중대제안의 전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시 행정부가 경수로 사업 재개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전력난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판단 자체에는 일리가 있었지만, 중대한 결함도 함께 도사리고 있었다. 중대제안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조건, 즉 북한이 경수로를 포기할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이 그것이다.
결국 북한은 경수로 사업의 종료를 전제로 한 중대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미국은 남한의 중대제안을 한껏 치켜세우면서 경수로 사업 종료의 근거로 악용하고 말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수로는 94년 위기를 해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의성의 핵심은 '제2의 경수로'를 찾는 일이 되어야 한다. 제2의 경수로는 신포 경수로의 부활이 될 수도 있고, 경수로를 먼 미래의 일로 돌리면서 '중대제안'을 획기적으로 보완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며,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수교 등 근본문제에 대한 조속한 해결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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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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