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리더십>랜덤하우스 중앙
나 역시 그런 세대들에 속해 있기에 <겸손의 리더십>(랜덤하우스 중앙, 저자 김경복)이라는 책이 솔직히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겸손을 강조할 만큼 겸손을 중시해서인지, 책 내용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반적인 '-다자체'로 끝나는게 아니라 '-해요'체로 끝난다.
독자 입장을 배려해 주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조용조용 훈계를 주는 듯해서 싫었다. 뿐만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푸는 것을 예로 들면서 한 번은 긍정적으로, 또 한 번은 부정적으로 들어 글의 일관성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공자의 정명 사상을 들고 나올 때는, 저자 스스로 자신의 아이들과 세대차가 느껴진다고 했듯, 나 역시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정명 사상이란 어떤 것인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것 아닌가. 자신의 본분에 맞게 제대로 행동하라는 뜻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 사상이 '니 분수도 모르고 날뛰지 마라'는, 가능성을 틀 안에 가둔 듯한 느낌이 들어 배울 당시부터 곱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은 수직형 관계도, 수평적 관계도 아닌 원형이라는 관계가 주장되고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사장은 사장다워야 하고, 사원은 사원다워야 한다'는 발상이 과연 더 발전적인 사회로 이끌어가는 데 도움을 줄까?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풍토가 짙게 배어 있다. 때문에 정명 사상의 본 뜻이야 어디에 있든, 그저 권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원이 어디서 건방지게'라는 식의 억압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정신적 사상에 불과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한 만화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가 "물 좀 떠와"라고 했을 때 프랑스 아이들은 "왜요?"라고 묻는게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니가 더 가까이 있으니까"라는 합리적인 대답을 해주어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랬다가는 "버릇 없다"고 혼쭐이 난다는 게 비교의 주된 내용이었다. 지금이야 나 역시 그런 어린이를 보면 "버릇없다"고 생각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어려서 이 문제는 한없이 나를 괴롭혔다.
어떤 위치에 있기에 그 사람이 맡아야 할 의무보다 권리나 대우가 강조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핵심에 어린 마음에 공자의 정명 사상이 그 밑바탕에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그 생각이 무척이나 싫었다.
이제는 나 자신도 그런 사회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보이라는 젊은 시절 리더십에 대한 예찬들에서 겸손하라는 충고를 들으니 울컥하는 심정이 생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요즘처럼 자신을 어떻게 알리느냐가 중요한 시대에 겸손하라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이기에, 이 책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실속없이 선물 포장만 하듯, 잘 포장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잘 꾸며내는 데 급급한 나, 그리고 우리 세대 중 그런 이들이 많기에 어쩌면, 이런 충고는 더욱더 가슴 속 깊이 담아두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말로만, 모든 것을 다 이룰 듯하다가 정작 회사에 들어와서 일은 잘 못하는 사원 때문에 실망했다는 관리자들이 많다는 결과가 나온 설문조사는 지금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그건 <겸손의 리더십>에서 수차례 여러 일화를 통해 강조하는 있는 '겸손',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자신감있되 자만하지 말며'라는 말이 있듯, 그렇게 하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세대는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 아니 자기 기만까지 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때로는 남을 무시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것은 아닌지, 내 주장과 다르다고, 그 생각을 마구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나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지금의 세대는 한 사안에 대해 찬반으로 나누어 격론을 쉽게 벌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또 쉽게 격론을 나누기도 한다. 혼자 살아가는 사회가 아닌 이 세상에서, 결국, 이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주는 단어는 우습게도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겸손'이라는 단어이다.
겸손이란 건, 책 표지에 나온 것처럼 '몸을 낮추어 마음을 얻는다'에 중점을 두면 되겠다. 사장 앞이라고 해서 굽신거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나와 다른 상대방의 의견을 내가 부족할 수도 있음을 알고, 일단 숙이고서 살펴보는 것' 그런 겸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자세가 없으면, 통합과 화해보다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는 사회로만의 진전이 있을 뿐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모든 생각이 같지는 않더라도, <겸손의 리더십>은 젊은이들이 한 번쯤 깊게 읽어보고, 오랜 시간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겸손의 리더십 - 몸을 낮추어 마음을 얻는 법
김경복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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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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