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수를 부른 이는 계화였다. 계화에 대해 무뚝뚝하게 대했던 장판수였지만 장소가 장소인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여기에 어쩐 일이네?”
헤진 옷에 버짐이 잔뜩 핀 얼굴로 계화는 그간의 고생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계화는 울먹이며 장판수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차선달께서 마음이 변하여 다른 이들의 설득을 받고 심양으로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주로 돌아갈 것을 강요받았지만 이를 따르지 않고 심양으로 와 이곳에서 병든 이들을 간병하며 장초관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계화는 장판수의 뒤에 선 평구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찌 된 일입니까? 저 자는 객잔에 있던......”
“아, 걱정하지 말라우. 나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하고 쫓아온 것이네.”
평구로는 계화를 보고서는 한숨을 쉬었고, 짱대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장판수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퍼부어 대었다. 장판수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보시라우요! 내래 입이 하나니 일일이 대답할 수 없다우! 그러니 입 다물고 내 말 좀 들어주면서 한명씩 물어보라우요!”
사람들의 눈길이 장판수에게 집중되면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사람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린 장판수는 크게 소리쳤다.
“내래 여기 있는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왔습네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람이 그 말에 대꾸했다.
“병사 수 천 명이 와도 모자랄 지경에 고작 세 명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데려가겠다는 거요? 차라리 몸값을 가져오지 그러오!”
장판수는 뜻밖에도 그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네다! 우리 세 명이 어찌 이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겠소! 그렇다면 고향으로 가려다가 도로 잡혀 들어온 사람들은 누가 데려가서 그렇게 움직인 것입네까? 중요한 건 마음가짐입네다! 노약자와 부녀자와 아이들은 앞서 가시오! 남정네들은 오랑캐들을 유인해 내어 갈 것입네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삼백 여 명 정도이고 사람들을 추려내어 보아도 힘 좀 쓰는 장정은 백 명 정도일 것이외다. 무기도 없이 어찌 추격해 오는 병사들과 맞붙어 싸운단 말이오? 가는 도중에 끼니는 어찌 해결할 것이오?”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렸지만 장판수는 소리를 지르며 좌중을 압도했다.
“여기 남아 있을 사람은 남아 있으시오! 내래 강요는 안갔소! 하지만 일이 이렇게 꼬여 버렸으니 저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가만히 두갔소?”
“저건 협잡이나 다름없다! 일을 저지른 놈들이 누군데 엉뚱한 소리를 하는거냐! 묶인 청의 관리와 병사들을 풀어주고 저 자를 넘깁시다!”
우락부락한 사내의 말에 몇몇 이들은 동조하며 앞으로 나설 기세마저 보였다. 평구로가 칼을 뽑아드려 하자 장판수는 이를 제지했다.
“우리가 순순히 잡혀 갈 것 같소? 따르지 않으려거든 관두시오!”
짱대가 병사에게서 빼앗은 창을 땅바닥에 쿵쿵 짓찧으며 소리 지르자 앞으로 나서려던 장정들은 움찔거리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떠날 자들은 어서 흩어져 짐을 꾸리시오! 한 시가 바쁘오!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이리로 모이시오!”
우락부락한 사내가 다시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저 놈 말 들을 거 없다! 단지 셋뿐인데 뭘 두려워 하는게냐!”
그 사이 한 사내가 몽둥이를 잔뜩 들고 와 땅바닥에 쌓아 놓았다. 십 여 명의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서는 장판수 일행을 에워쌌다.
“이거 말로 해서는 안 될 놈들이네.”
짱대가 창 자루를 굳게 움켜잡으며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장판수는 한 숨을 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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