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이라크에서 복귀한 장병을 환영하는 행사에 참석한 딕 체니 미 부통령.백악관 홈페이지
기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금융제제는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온 미국 강경파의 '카드'이다. 1기 부시 행정부는 태평양 사령부 소관의 이른바 '작전계획 5030'을 입안해 북한은 돈줄을 끊고 북한의 군사력을 소진시켜 내부 동요를 유발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이 계획은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의 반대에 막혀 유보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구상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도구 모음(tool kit)'으로 명명된 새로운 대북제재 방안이다. 2월 14일 <뉴욕타임즈>의 보도로 그 실체가 알려진 이 계획은 네오콘의 수장격인 딕 체니 부통령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새로운 대북제재 방안은 미국이 알-카에다에 사용한 방법과 흡사한 방식으로 북한의 돈줄을 끊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마약, 위조지폐, 무기 수출 등을 통해 김정일 정권이 벌어들이고 있는 외화를 추적·동결해 북한의 경제적 동요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계획의 설계자가 로버트 조지프라는 점이다. 그는 1기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량살상무기 대확산(counter-proliferation) 담당관을 지냈고, 2기 들어서는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튼의 뒤를 이어 국무부 국제안보 및 군비통제 담당 차관을 맡고 있다.
그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초강경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온 볼튼과는 달리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전략가'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볼튼처럼 대담하거나 공공연히 도발적이지 않은 '은밀한' 조정자로서 조지프는 강경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있어 볼튼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조지프 차관은 '상대적인 온건파'에 속하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오콘의 복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위조지폐 혐의를 근거로 한 금융제재는 네오콘 등 미국 강경파들이 6자회담 프로세스를 역전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준비된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강경파들은 북한과의 협상을 꺼리면서 북한을 계속 '적'으로 남겨두거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선호해왔다.
이들은 당초 6자회담 공동성명에 미국이 합의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 여파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등 안팎의 '악재'(?)로 궁지에 몰린 부시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들의 요구는 묵살되었다.
그러나 네오콘 등 강경파의 반격은 계속되었다. 이들은 공동성명 채택과 관련해 미국이 지나치게 양보했다며, 공동성명 '폄하하기'에 나섰다. 아울러 지난 5월에 이어 최근 모색되었던 힐 차관보의 방북도 가로막았다. 특히 위조지폐, 마약, 무기 수출 '근절'을 명분으로 내세워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주도함으로써, 북미간 신뢰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러한 흐름은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1기 때와는 달라졌다"라는 평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거의 변화가 없고, 체니 등 네오콘의 영향력이 여전하며, 미국 정부 내 강온파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는 아울러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6자회담 공동성명 채택 이후 마치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말해왔다. 이 과정에서 '중대제안'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면서 자화자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지나친 비관론도 곤란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론은 비관론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무현 정부는 대외정책이 자기만족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긴 '전략'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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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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