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겟꾹찌' 맛 비결이 뭐예요?"

서산반도 향토음식 '겟꾹찌'는 찌개용 김치

등록 2005.12.10 18:00수정 2005.12.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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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갑자기 어머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좀 언짢은 목소리였다.


"눈 왔다고 다른 애들은 다 전화했더라."
"예? 거기 눈 왔어요?"
"끔찍시리 왔다."

어머님이 사시는 충남 태안에는 눈이 엄청 많이 내려 다른 며느리들은 모두 안부 전화를 했는데 맏며느리나 되는 너는 어떻게 전화도 안 하느냐, 뭐 그런 의도이신 것 같았다.

"여기는 눈 하나도 안 왔어요."
"어째 그렇다냐? "

어머님도 나만큼 놀라시는 것 같았다. 쌀 찧으러 정미소 가야 하는데 경운기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눈이 많이 내렸기에 다른 지방에도 으레 그렇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마침 동서들도 자기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해 큰 아들이 살고 있는 양양에도 눈이 많이 내렸거니 했다고 하셨다. 특히 추운 강원도 지역이라 눈이 제일 많이 내릴 줄 알았는데 눈 구경이라고는 못 해봤다니까 매우 의아해 하셨다.

"그래서 네가 눈 온 줄도 몰랐구나."


그제야 전화 안 넣은 나에 대한 원망이 좀 가시는 듯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텔레비전 뉴스도 보지 않고 신문도 보지 않기에 전국에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렸는지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우리 고장에 얼마 전에도 약간 큰 일이 있어 뉴스에도 나왔다고 했는데 그걸 나만 모르다가 아줌마들 하는 얘기를 듣고 엄청 놀라니까, 모두들 뒷북친다며 놀렸었다.

"다른 게 아니고, 어제 김치 좀 부쳤는데 오늘은 들어간다고 그러더라."


김치 부쳤으니 집에서 택배 아저씨 기다렸다가 받으라는 게 본론이었다.

"겟꾹찌도 한 통 보냈다. 맛있게 됐더라. 아버지하고 요즘 만날 그거 지져서 밥 먹는다."

어머님은 '겟꾹찌' 한 통에 일반 김치 한 통, 파김치까지, 또 불렸다가 밥에 섞어 먹으라고 파란 콩까지 보내셨다. 어머님 힘들다고 김치는 직접 담가먹는다고 했지만 어머님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셨는지 이렇게 겟꾹지랑 김치를 보내셨던 것이다.

태안지방의 향토음식인 '겟꾹찌'
태안지방의 향토음식인 '겟꾹찌'김은주
어머니께서 보내신 겟꾹찌는, 지금은 겨울이면 으레 먹는 음식인 줄 알지만 결혼 전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음식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태안이나 당진, 해미, 서산 등 이런 지역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솔직히 이름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다. '겟꾹찌'라는 이름을 통해서는 이 음식의 주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감이 안 온다.

태안에서는 주로 '겟꾹지'라고 발음하는데, '깨꾹지'라 하는 데도 있고, '게꾹지'라 하는 데도 있지만 정식 이름은 '겟국찌개'라고 한다.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냄새 또한 특별했다. 뚝배기에 담긴 겟꾹지가 끓을 때 올라오는 냄새는 청국장을 압도할 정도였다. 청국장이 먹는 사람은 맛있게 먹지만 냄새는 좀 독특하면서 매우 강한 것처럼 겟꾹찌도 정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청국장과 겟꾹찌를 동시에 끓이면 어떤 냄새가 더 진하게 날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주방 공기를 순식간에 바꿔버리는 겟꾹찌 냄새를 '바다 냄새'라고 해야 할지 '소금에 절인 배추 냄새'라고 해야 할지 정말 복잡한 냄새였다.

그러나 맛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한 번 먹으면 계속 먹고 싶어지는 그런 맛이었다. 첫 숟가락에 느껴지는 맛은 강한 짠맛이지만 먹다가 보면 시원하면서 구수하고, 계속 먹고 싶어지는 그런 감칠맛이 있었다. 땅에 묻었던 시원한 김치 한 사발이나 맛있게 잘 구워진 자반고등어 한 토막을 밥도둑이라고들 하는데, 겟꾹찌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말 또한 밥도둑이다.

시댁이 있는 태안 지방은 어느 집을 막론하고 김장할 때 겟꾹찌도 꼭 함께 담갔다. 특히 우리 어머님은 겟꾹찌를 잘 담그셔서 시누이인 고모는 친정에 오면 꼭 겟꾹찌 좀 달라고 해서 한 통씩 얻어갔다. 고모도 태안에 살기 때문에 자기 집에도 겟꾹찌를 담가 놓았지만 어머님이 만든 게 특히 맛있다고 얻어가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어머님이 담근 겟꾹찌가 맛있다며 뭐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맛있느냐고 한 마디씩 한다고 하셨다.

"뭘 어떻게 하기는, 지들은 돈 아깝다고 김치나 절여서 만들지만 난 꽃게에 생새우에 조갯살에 맛있는 거 많이 넣으니까 맛있지, 맛이 뭐 별거인가. 좋은 재료 많이 넣으면 맛있어 지지."

우리 어머님은 겟꾹찌를 담글 때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무조건 아끼는 것에 길들여진 시골 사람들하고는 좀 다른 어머님의 성격도 한 몫 하는 편이다. 시골 노인네들이 아까워서 좋은 재료 팍팍 넣지를 못하는데, 먹는 거에는 절대로 돈을 아끼지 않는 어머님은 태안 장에서 새우, 꽃게 등 싱싱한 해산물을 사와 듬뿍 넣는다고 하셨다.

싱싱한 해산물 뿐 아니라 겟꾹찌에 들어가는 야채 또한 어머님이 직접 키우신 맛있는 야채를 쓰시고 마늘이나 생강 등 양념도 어머님은 듬뿍듬뿍 넣는 편이었다. 재료 때문인지 어머님 손맛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님은 겟꾹찌 만큼은 당신이 최고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겟꾹찌는 태안 등 서산반도에서 주로 담가 먹는 찌개용 김치다. 이 지역은 농사도 짓고 갯벌에서 조개나 낙지, 꽃게 등 해산물도 동시에 얻을 수 있는데, 육지와 바다가 공존하는 이런 지역적 특성이 겟꾹찌와 같은 음식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인 듯 했다. 겟꾹찌는 밭에서 나오는 무, 배추와 바닷가의 해산물이 어우러진 음식으로 태안 등을 여행하면 겟꾹찌 백반이라고 해서 식당에서도 사 먹을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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