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여백
그의 글은 '낡고 허름한 시절이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으니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다독여 준다. 무엇을 해도 잡념만이 판을 치는 내 머릿속에 고요함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같이 텁텁한 일상에는 더욱 자주 최인호와 대면하게 된다. (그렇다고 최인호 전작주의자는 아니다.)
이번 책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다. '사랑'이라 새겨진 책들을 그리 신임하지 않지만 지난번에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었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훗날 삶의 보물로 빛날 고통들
이 책 역시 그의 지난한 이력들이 재미와 감동을 곁들이며 상세히 기록돼 있다. 육십이 넘은 나이지만 최인호는 내게 늘 '젊은 작가'다. 아마도 그가 가진 남다른 열정과 투지 때문이겠지만 "나보다 강한 것,권위적인 것,위선적인 것에 도전하고 덤벼드는 기질을 지녔지만 근본적으로는 낙관주의자"라는 그의 고백이 그의 이미지를 더욱 고정시킨다.
단락 단락 엮어진 짧은 글들을 통해 그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일상사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는 영민함도 엿볼 수 있다.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던 아버지와 예술적 기질을 지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웃집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비를 벌던 초등학교 시절,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문학 초년생 때의 일 등은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터널 속과 같음'을 감지하게 하는 소재다.
특히 소설 <왕도의 비밀>을 쓰기 위해 중국 현지를 방문한 부분에서는 조선족의 민감한 반응이 새롭게 와 닿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강인함이 어떤 모습인지를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한 후배도 인상적이다. 그의 짧은 인생은 잠을 설치게 했다. 부단히 노력한 만큼 보상 받아야 할 그의 삶이건만 도리어 한순간에 스러지고 만다. 그래서 인생은 '통곡'의 대상인가?
물론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통곡의 의미는 이와 다르다. 세상사 모든 일에 열정을 갖자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최인호를 동의할 수 없다. 내게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목놓아 우는' 통곡인 까닭이다.
12월도 끝자락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휘청대는 우리 인생이지만 다시금 조금씩 부여잡고 여미는 자세를 배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최인호와의 만남을 권해본다.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최인호 지음,
여백(여백미디어),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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