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연가집회는 '교육대란'
막무가내 학교폐쇄는 '자위권'

[분석] 사학법인의 '학습권 짓밟기'에 힘 보태는 조중동

등록 2005.12.14 16:01수정 2005.12.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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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폐쇄할 것이니 날선 바람이 불어오는 길거리에 나앉으라고 한다. 유치원·초등학교 코흘리개 아이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224만 3875명의 사립학교 학생 앞에 다가온 핵폭풍 같은 으름장이다.

사립학교는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집. 지난 13일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사학협)가 올해부터 내년까지 줄줄이 이 배움터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사립학교법을 반대하기 위한 사업계획 중의 하나란다.

이런 사학협의 무척 위험한 카드에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교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참교육학부모회·참여연대·흥사단·전교조 등 44개 시민단체가 모인 사립학교법개정 국민운동본부는 14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그럼 교원단체의 토요일 반나절 연가집회를 놓고도 '교육대란'이니 '수능생 대혼란'이니 들먹일 정도로 요란을 떨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삼총사의 태도는 어떨까. 하루도 아니고 아예 3년 이상의 학습권을 송두리째 빼앗겠다는 음모 앞에 이들은 과연 분노하고 있을까.

교사들 반나절 연가엔 치떨던 이들이...

조선일보 11월 8일 A10면.
조선일보 11월 8일 A10면.조선PDF

역시나 이들은 아니다. 조중동은 오히려 "사학 간판 빌려 '좌파 전위대'를 키우려 한다"(동아일보 13일치 사설 제목)면서 학교폐쇄론자들을 편들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13일치 사설에서 "상산고 홍성대 이사장은 '…다른 이념을 가진 인사들이 뛰어들어 헌법에도 맞지 않는 자신들의 교육철학을 강의하려 든다면 그런 학교는 없는 게 낫다'고 했다. 이들의 지적은 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이유 있는 항변들이다"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이 신문은 하루 전에 나온 12일치 사설에서도 "교육의 30%가량을 떠맡고 있는 사학의 경영주체인 법인들은 학교 폐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이념 편향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학교 이사회를 변질시킬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고 감정까지 보태어 내용을 중계하고 있다.

이 사설은 결론에서 "교육 수요자인 다수 국민이 극히 일부의 사학 비리 때문에 학교를 전교조 손에 넘겨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학부모들도 사학법인들과 함께 자구(自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사학재단을 거들고 있다.


물론 이에 앞서 나온 <동아일보> 10일치 사설에서는 "헌법소원 등 법률적 대응수단은 충분히 강구하되 휴교나 신입생 모집 중단 같은 극단적 투쟁은 피해야 한다"고 적긴 했지만, 여전히 "법을 무리하게 만든 세력에 대해 사학법인들이 강경하게 반발하는 것은 자위권 차원에서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조선일보>는 한 술 더 뜨고 나섰다. 이 신문은 10일치 '사학법에 무슨 딴 뜻 있기에 이렇게 밀어붙였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이에 대한 항의로 다음주 중 하루를 휴교하고 앞으로 헌법소원, 정권퇴진 운동, 2006년도 신입생 모집 중지, 학교 폐쇄 등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한 뒤, '사학법이 개정되면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리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신문은 속내를 다음처럼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학교 재단들이 교육의 뜻을 접고, 있는 학교마저 문을 닫겠다고 나서면 정부와 여당이 책임질 것인가. 더구나 각 종교 교단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건학 정신에 맞는 교육을 시키지 못한다면 왜 출혈을 해가며 교육에 투자하겠는가."

사학재단과 한통속이 되어 교육부와 정치권을 협박하기에 이른 셈이다.

학교폐쇄, 맞장구 이어 협박까지

<중앙일보> 또한 학교폐쇄 시도에 힘을 보태고 나섰다. 이 신문은 12일치 사설 '손 놓고 있던 교육부 뒤늦게 으름장'에서 학교폐쇄론을 내세운 사학재단을 편들고 나선 반면, '학습권 피해 우려'를 밝힌 교육부를 비판했다.

"학생 모집 중지와 신입생 배정 거부는 물론 학교 폐쇄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교육 현장이 대혼란에 빠지는 최악의 사태가 우려된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데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책임이 크다."

이어 이 신문은 "나 몰라라 하던 교육부는 사학들이 집단적인 위법 행동을 할 경우 법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면서 "사학과 교육당국의 대립이 학생의 학습권과 수업권 침해로 이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교육부는 개정안 시행령에 반드시 사학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눈을 씻고 봐도 학교 문을 닫겠다는 사학재단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다.

12월 10일 조선일보 사설.
12월 10일 조선일보 사설.조선PDF

이 같은 사설 내용은 <중앙일보>가 한 달 전인 11월 10일에 실은 '전교조 막을 힘은 학부모밖에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이다.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주말에 전교조는 교사대회를, 교총은 총궐기대회를 연다. 학생들을 내팽개친 채 거리로 뛰쳐나가 평가제 반대를 외치며 시위하겠다는 것이다. 수능을 앞두고 평가제 사태로 피해를 보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안중에도 없다."

사설은 끝 부분에서 "더 이상 정부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이제는 교육의 앞날을 걱정하는 학부모와 중도적인 시민단체들이 나설 도리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전교조가 횡포를 부리면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아가고 항의해야 한다. 그래야 전교조가 찔끔할 것"이라고 전교조항전에 나설 것을 부추긴 바 있다.

"전현직 사주들, 사학 이사장 맡아온 터라 이해는 되지만..."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조중동의 학교폐쇄 움직임 맞장구에 대해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조중동 보수 신문이 그 역할을 포기한 지 오래라 언론이라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라면서 "최소한 자기 자식들의 학습권이라도 생각하는 신문이라면 이렇게 사학을 일방적으로 편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낙성 사립학교법개정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전현직 사주들이 사립재단의 이사장을 맡아온 터라 이들의 안타까움을 인간적으로는 이해할만 하다"면서도 "하지만 사회의 공기인 언론 사업을 하는 신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더 이상 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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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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