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28회

등록 2005.12.15 08:16수정 2005.12.1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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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9 장 형세역전(形勢逆戰)

모용수가 마련한 마차는 아주 튼튼했다. 구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실내 역시 화려하고 넓었다. 안락하게 꾸며져 있어 쉬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 안에는 모용수와 일엽이 옆에 나란히 같이 앉고 그 맞은편에 담천의가 앉아있었다.


기분을 잡치게 한 두 사내를 따돌리고 마차에 오른 모용수는 담천의의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사내가 누구냐고 물을 만도 한데 담천의는 묻지 않았다. 술까지 몇 잔 마신 그는 모용수의 어색함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느라 피곤했던 모양인지 마차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다.

정말 그는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안락한 느낌이 주는 마차의 밀폐된 공간이 그의 긴장감마저 사르르 녹인 것일까? 아주 푹 잠이 든 것 같았는데 그것은 모용수도 마찬가지였다.

모용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꼿꼿하게 앉은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인물은 일엽뿐이었다. 그 역시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잠을 자는 것인지 아니면 명상에 잠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마차가 달린지 족히 두세 시진은 지난 것 같았다. 그러다 마차가 어느 때부터인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관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든 것 같았다. 마차의 흔들거림이 더욱 심해지고 마차바퀴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렸다.

마차의 흔들림에 안에 타고 있던 세 사람의 몸도 따라 이리저리 휩쓸렸다. 그러다 보니 잠이 깨는 것은 당연한 일.


“흐음….”

나직한 숨소리와 함께 담천의의 눈이 슬며시 떠졌다. 눈은 떴지만 아직까지 잠이 덜 깬 듯 게슴츠레했다. 더 자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는데 마차의 흔들림과 마차 바퀴가 지르는 굉음에 하는 수 없이 잠이 깬 것 같았다.


“너무 시끄럽군….”

“하… 음… 소로(小路)로 접어든 모양이오.”

모용수도 깨어난 듯 길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그 역시 눈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눈빛이 온전한 사람은 일엽 밖에 없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았는지 아니면 두 사람보다 일찍 깨어있었는지 몰라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맑고 고요한 눈으로 담천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담천의는 졸음에서 깨어나려는 듯 손으로 이마를 몇 번 치고 턱을 문질렀다. 하지만 마차가 너무 흔들려 제대로 앉아있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몸은 연신 흔들리면서도 길게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천병정(千兵鼎)이 만든 마차라 해도 산길에는 소용이 없는 모양이오. 이러다가는 마차가 부서질 것 같소.”

“…….!”

담천의의 말에 일엽과 모용수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엽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쳐 지나간 것도 같았다. 모용수가 말을 받았다.

“천병정에서 만든 마차는 너무 튼튼해 이런 길을 오주야(五晝夜) 내내 달린다 해도 부서지지 않소. 헌데… 담형은 이 마차가 천병정에서 만든 것임을 어찌 아셨소?”

천병정은 죽은 양만화를 대신해 산서상인연합회 오대수장이 된 나종관(羅宗冠) 소유의 병기창(兵器廠). 이미 그의 아들 나충일(羅忠壹)이 신검산장에 들어왔다가 망신을 당한 바도 있었다.

“이렇듯 호화롭고 안락한 마차를 만들 곳이 천병정 밖에 더 있겠소? 더구나 마차에 오르다 보니 마차 앞쪽 한 귀퉁이에 천병정의 표식이 있는 것을 보았소.”

천병정에서 만든 물건은 매우 귀했으며 고가였다. 천병정에서 만든 이런 마차는 최소한 중원에서 이름 석자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호나 고관대작이나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이어서 돈이 있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시 담형의 눈은 너무 세심하고 예리하구려.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소.”

모용수는 진정으로 감탄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너무나 감탄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담천의의 말에 갑자기 몸이 굳어 들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천병정에서 만든 튼튼한 마차라지만 우리와 마부 말고 세 사람이나 이 마차에 매달려 있다면 이토록 험한 길에서 그 무게를 견딜 수 있겠소?”

“정말 위험한 인물이군.”

일엽의 얼굴이 굳어지며 눈에 미세하지만 살기가 떠올랐다. 모용수는 담천의와 일엽을 번갈아 보면서 잠시 갈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탄식했다.

“휴우… 조용히 모시려 했는데 담형이 너무 뛰어나 그러지 못하겠구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담천의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뭔가 튀어 나오더니 순식간에 담천의의 몸을 옭아매었다. 담천의의 허리와 허벅지, 그리고 팔뚝과 발목에 손가락 두 개 정도 굵기의 줄이 감기며 당겨지자 담천의의 몸은 순식간에 앉은 상태에서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무슨 짓이오?”

몸이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변해 버렸지만 담천의는 나직하게 물었다. 약간의 노기가 섞인 목소리였는데 얼굴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담형을 속박하고 있는 그것은 쇄금삭(碎金索)이란 것이오. 고래 힘줄과 철, 흑사(黑砂)를 섞어 만들었다고 하는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옥죄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소. 되도록 힘으로 풀 생각은 버리시는 게 좋소. 자칫하면 손발이 모두 잘릴 수도 있으니 말이오. 천병정에서 특수하게 제작된 것이니 웬만한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을 거요.”

“품질만큼은 확실하겠군.”

“이를 말이겠소? 헌데 담형은 진기도 끌어올릴 수 없을 텐데 이 마차에 세 명이 더 타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눈치 채셨소?”

“이 마차의 바닥과 지붕은 기형적으로 두툼했소. 물론 안락함을 위하여 두껍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사람이 들어가 눕는다면 충분할 정도라 탈 때부터 기이한 생각이 들었소. 확인하느라 슬쩍 두들겨보니 속이 빈 것 같았소. 더구나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던 것이오.”

담천의는 금방 평상시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쇄금삭으로 인해 묶여 있었지만 당황하거나 모용수를 탓하지도 않았다. 모용수는 고개를 끄떡였다.

“담형의 침착함은 거의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구려. 일엽형의 말대로 담형은 너무 위험한 사람이오.”

“과찬의 말씀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소? 모용형을 탓한다고 무슨 수가 생기겠소? 아니면 내가 이런 형편에 발버둥친다고 쇄금삭이 끊어지겠소? 헌데….”

담천의는 잠시 말을 끊더니 오히려 빙그레 웃었다.

“모용형은 내가 공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어찌 확신하시오?”

“소제 역시 공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오.”

모용수 역시 담천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우리는 똑같이 술을 마셨소. 소제가 공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담형 역시 공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일거요. 물론 담형이 소제보다 내공이 정순하고 고절할지는 몰라도 공력을 사용하려면 아마 최소한 세 시진은 더 지나야 될 것이오.”

“술에 독(毒)을 탔소?”

“독은 아니오. 독을 다루는 사람들이 무색무취무향의 독을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무형독(無形毒)은 존재하지 않소. 독으로는 세심한 담형의 눈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군자산(君子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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