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29회

등록 2005.12.16 08:08수정 2005.12.1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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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산은 일종의 마취제다. 진기를 흩어지게 하여 공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더구나 물에 쉽게 녹고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군자산은 독이 아니어서 해독제가 없다. 시간이 흘러 군자산의 약효가 사라지거나, 아니면 그저 물을 많이 마시거나 해서 오줌으로 빼내던가, 많이 움직여 땀으로 배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군자산 만으로는 걱정이 되었소. 그래서 구하기 힘든 제룡수(制龍水)를 몇 방울 첨가했소.”

제룡수 역시 잠이 들게 하는 수면제나 마취제의 일종이다. 제룡수를 먹게 되면 몸이 나른해지고 무겁게 느껴진다. 그 효과가 얼마나 강하면 승천하는 용을 날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로 제룡수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군자산이나 제룡수는 그 점소이가 술에 넣었겠구려.”

“물론이오. 어찌 담형이 보는 앞에서 소제가 수작을 부릴 수 있겠소?”

“짐작은 했었소. 그 점소이의 모습은 그럴싸했고, 매우 바쁜 듯 했지만 사실 우리 탁자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소. 더구나 적당한 음식을 가져오라고 할 때에도 가져온 음식이 모용형의 취향에 맞는 음식들이었단 말이오. 더구나 그는 분명 새 손님이 우리 탁자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술잔을 더 가져오지 않았소.”

보통의 점소이었다면 손님이 새로 올 때 그에 맞추어 술잔이나 찻잔을 더 가져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더구나 은덩이까지 받은 탁자에 새로운 손님이 왔음에도 찻잔이나 술잔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그곳에 합석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던가, 그들이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것일 수 있었다.

더구나 모용수의 취향에 맞는 요리를 내왔다는 사실은 우연일수도 있지만 점소이가 모용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의미도 있었다.


“역시 의심을 하기는 했구려. 소제는 담형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똑같이 술을 마셨는데도 말이오.”

“또한 새로 온 사람이 분명 경고를 했소. 술에 뭔가 섞인 것 같다고...”


“그래서 확신을 했구려.”

“그 사람은 사실 나에게 경고하는 것 같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소. 이미 나는 산산이 기다리지 않고 모용형 옆에 저 사람이 있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었소.”

“어떻게...?”

“일엽이란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보았기 때문이었소. 또한 나중에 온 추학이란 사람은 내가 한 번 만나 본 사람이었소.”

“그렇군. 추학이 모두 말했군. 추학이 주루에 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 모두 전혀 이상한 기미를 보이지 않기에 넘어갔는데 그것이 실수였군.”

일엽이 뇌까리듯 중얼거렸다. 모용수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담형은 아무런 의심 없이 술과 음식을 먹고 이 마차에 태연하게 같이 탔던 것이오? 왜.....?”

“설사 술 안에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었다 해도 나는 마셨을 거요.”

술에 독이 들어있더라도 마신다는 것은 곧 자살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모용수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소?”

일엽 역시 호기심이 치미는 듯한 기색을 띠웠다. 담천의가 모용수를 직시하며 말했다.

“나는 내가 형제라 생각한 사람을 끝까지 믿기 때문이오.”

그 말에 모용수는 멈칫했다. 담천의의 말이 비수가 되어 자신의 가슴에 꽂히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 언뜻 자책의 기색이 떠오르면서 담천의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형제를 배신하거나 실망을 주는 일은 사내로서 할 짓이 아니다. 하지만 일엽은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인해 죽게 되겠군.”

일엽의 말에 담천의는 웃었다. 그 웃음은 매우 밝은 듯 했지만 약간의 조소도 섞여 있는 듯 했다.

“죽고 사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오? 나의 어리석음으로 죽는다면 남을 탓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최소한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럴만한 능력도 없소.”

“추학이 왔으니 그들 역시 왔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군. 하지만 우리가 당신의 수족(手足)인 이대오위의 수장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일 것 같소? 그들의 움직임은 빠짐없이 우리들의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소. 설사 그들 중 누가 우리의 이목을 피하고 이곳에 온다 해도 지금 당신은 나의 단 한 수에 죽게 될 것이오.”

이미 준비를 완벽하게 했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이대오위의 수장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니...? 하지만 담천의는 여전히 느긋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와 내기하겠소? 당신이 손을 쓴 후 내가 죽지 않으면 반드시 당신은 죽을 것이오.”

무엇을 믿고 저러는 것일까? 담천의는 무공이 상실된 상태에서 손발도 쇄금삭에 완전히 묶여 있어 움직일 수 없는 처지다. 일엽이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이다. 일엽의 눈에 번뜩 살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단 칼에 담천의를 베고 싶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엽은 금방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격장지계(激將之計)라.... 역시 대단한 사람이군.”

분명히 담천의는 일엽을 자극하고 있었다. 일엽은 담천의의 의도를 이제야 파악한 것 같았다. 모용수의 애매한 태도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엽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모용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 빨리 알고 싶은 모양이군. 모용형이 대신 말해 주시겠소?”

일엽은 담천의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모용수가 못마땅한 듯 했다. 사내가 어차피 일을 벌려 놓았으면 자신 있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후회할 일이라면 아예 벌리지 않아야 했다. 모용수 역시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는지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일엽형의 말대로 담형이 자고 있을 때 손을 썼어야 했나보오. 하지만 나는 담형이 마음을 돌리거나, 설사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해도 매우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소.”

모용수의 말에 일엽이 재차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소. 밤이 길면 꿈도 많이 꾼다고 하지 않았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담천의를 죽이자는 말이었다. 모용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문득 모용수가 고개를 돌려 일엽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게 되오? 일엽형이오? 아니면 나요?”

모용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선을 분명히 긋자는 말이었다. 일엽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굳이 따진다면 이 일에 대해 모용수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용수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그는 얼굴을 굳혔다.

“모용형이오.”

일엽은 대답을 하면서 담천의 뿐 아니라 모용수마저 베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세가의 자식들이란 것이 다 이렇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완벽한 함정에 빠진 자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하여 일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모용수 마음대로 하라는 태도였다.

“아직 갈 길도 머니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소?”

모용수가 고개를 돌리며 담천의에게 말했다.

“모용형의 말을 듣는 것이야 어려울 것이 없소. 헌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오?”

“담형이 가고자 하는 곳이 천마곡 아니오? 우리는 천마곡으로 가고 있소. 하지만 담형은 우리가 왜 이러는지 미리 알기 위해 자꾸 심기를 낭비하지 마시오. 어차피 소제가 다 말씀드릴 것이오.”

모용수 역시 지모라면 남에게 뒤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인물. 담천의가 무심코 툭툭 던지는 질문의 의도를 모를 바 아니다. 그는 담천의의 입을 다물게 해놓고 시선을 천정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육십이 넘도록 기구하다면 기구하게, 행복하다면 행복하게 살아 온 한 인물에 대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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