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에 수도가 얼면 난감

등록 2005.12.20 16:02수정 2005.12.2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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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모터가 얼었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면 모터가 언 게 아니고 배관이 언 것이다.


작년에도 지하수가 얼어서 화장실 물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주방에만 연결되어 있는 간이상수도로 한동안 지내느라 고생을 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일찌감치 추위가 오기도 전에 열선을 감아놓고, 헌 이불을 가져다 덮어 보온을 했는데도 얼어 버렸다.

월요일인 어제는 내가 병원진료를 받느라 하루 휴가를 냈었다. 월요일 휴가를 가능하면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참 추울 때 사흘 동안 진료소를 비우게 된 셈이다.

어제 저녁에 진료소에 들어와 혹시나 싶어 제일 먼저 한 일이 물이 나오나 안 나오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진료소에 들어오자마자 수도꼭지를 열었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오랫동안 물을 사용하지 않아 얼었구나 싶어 얼른 드라이기를 꺼내들고 모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모터를 싸 두었던 스티로폼과 이불을 벗겨내고 열선을 확인해 보니 열선은 따뜻했다. 많이 얼지는 않았겠구나 싶어 조금은 안심하면서 드라이기를 약하게 틀어두고 한 시간쯤 두었는데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해야 하지만, 몸도 좋지 않고 날씨도 점점 추워져 어제 밤에는 모터 녹이는 것을 포기했다. 원래대로 다시 덮어두고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시 드라이기를 켜 놓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드디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겨우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물이 또 나오지 않았다. 물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사이 다시 얼어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 테고, 이번에는 모터가 고장 난 것 같았다. 작년에 얼었다가 녹았을 때도 물이 나오지 않아 모터 수리기사가 출장을 와서 모터와 배관 사이에 있는 고무를 갈아 준 적이 있었다.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모터 집에 전화를 했다. 오늘은 바빠서 못 나온단다. 그럼 언제 오실 수 있느냐고 해도 대답을 않는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이틀이면 이틀, 사흘이면 사흘 뒤에 올 수 있다고 얘기는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다른 집에 전화를 해 보란다.


우리 군에 모터를 수리하는 집은 달랑 두 집이다. 그런데 그 두 집에 모두 전화를 해도 두 집이 같은 얘기다. 언제 올 수 있다는 얘기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는 얘기뿐이었다.

우리 마을은 군과 많이 떨어져 있는 오지 마을이다. 주민들의 생활권도 같은 군이 아니라 인접한 시가 더 가깝다. 그래도 관공서니까 같은 자치단체에서 물건도 사고, 공사도 하라는 얘기를 간혹 듣는지라 대부분 시로 나가지 않고 군으로 간다. 그런데 많지도 않은 영업집에서 서로 미루고 하지 않겠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길이 멀어 출장을 나올 때 우선순위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물을 사용하지 못하면 생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장 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자기들이 바빠서 출장을 올 수 없으니 내가 알아서 고치던지, 아니면 언제까지라도 물을 사용하지 말고 살라는 얘기인지….

우리 군과 인접한 시에 있는 모터 집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집에서는 같은 시가 아니면 나갈 수가 없다고 하고 겨우 두 번째 연결된 집에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조금 아까 출장 나온 사람들 얘기로는 모터가 너무 오래 되어서 모터를 교체해야 한단다. 내가 알기로는 모터를 바꾼 지 십년은 훨씬 넘었고 십 오년쯤 되었거나 그보다 오래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모터를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에 두 말 않고 바꾸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헌 모터를 뜯어내어 새 모터를 가지고 온다며 간 상태다. 새 모터를 가져다 맞춰주면 한 동안은 모터에 대한 근심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시골에서 단독주택을 여자 혼자 힘으로 관리하면서 산다는 게 때로는 버겁고 힘이 든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모터가 고장 나거나, 건물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면 참 난감하다. 협의회장님에게 의논을 드리기는 하지만 결국은 대부분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시골에서 자랐고, 직장 때문에 혼자서 시골에 산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걸 보면 시골살이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시골에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전화 고장 나고, 보일러 고장 나면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하는 모습이 남의 얘기 같지가 않은 이유도 나 역시 같은 처지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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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하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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