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을 거느리고 무등을 맞이하는 병풍산의 새해아침

눈부신 설산풍경은 희망의 새날 기약하고

등록 2005.12.30 17:34수정 2005.12.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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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일 병풍산 투구봉에서 새해 일출을 맞이하고 있는 해맞이 참석자들 ⓒ 이규현

늘 그러하듯 마지막 남은 한장의 달력이 이제 하루를 남기고 애처로이 매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마냥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남은 달력의 무게는 천근만근인듯 모진 바람에 쉴틈이 없습니다.

다시 지난 365일을 돌아보는 순간은 나를 에워싼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해보고자 노력하자던 다짐의 흔적들은 지금 어디메쯤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인지?

늘 하는 아쉬움들이 더욱 큰 것은 한해의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적 상징성들이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꼭 이런 때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날들 속에서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할텐데 아직도 부족한 내공은 매너리즘에 빠져들어 본연의 나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가 가까워질수록 세상에 대한 타협이라기보다는 좀 더 넓은 가슴과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넓혀내는 나를 바라보는 기쁨이 있어야 할텐데 현실의 장벽들은 뒷산의 영봉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매번 산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산은 누가 뭐라 해도 늘 그 자리에 있고 오를수록 더욱 고개 숙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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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일 병풍산의 일출.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삼인산이며 삼인산 너머 담양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사이를 영산강이 굽이쳐 흘러갑니다. ⓒ 이규현

누구에게나 어릴적 뒷산에 대한 추억과 감상은 깊게 마련이지만 우리 마을의 뒷산은 장군대좌에 얽힌 풍수지리설 등으로 마을 사람들에겐 "큰바위 얼굴"처럼 각인되어 있습니다.

저희 지역은 광주와 인접한 곳으로 광주에서 북쪽으로 이전에 무진도독고성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입니다. 또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최초로 도읍을 정하였다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영산강이 앞뜰을 굽이쳐 흘러가고 뒤에는 병풍산, 불대산, 삼인산의 영봉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곳입니다.

호남정맥의 대간들이 지리산자락으로부터 흘러흘러 내려와 광주에서 한양을 가는 지름길인 한재는 순 우리말로 '큰 고개'라는 뜻으로 한자로 하면 대치(大峙)가 됩니다.
남북으로 뻗어 있는 한재골과 동서로 뻗어 있는 창평, 장성 두 마운대미를 한재골 4대통문이라 하는데 바로 이 안에 장군대좌가 있다는 게 풍수지리설입니다.

어떻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한재골의 지명들은 군대용어로 가득합니다. 수항골(항복을 받는 골짜기), 통사동(군대를 거느리는 골짜기), 투구봉(장군이 투구를 쓰고 있는 형상의 봉우리), 북바위(군악을 연주하는 바위), 칼등, 비룡실(용이 날아가는 골짜기) 등등 온통 군대용어입니다.

마운대미라는 지명도 일설에는 구름이 씻겨가는 고개를 일컫는다 하기도 하고 장수가 군막을 쳐 놓은 형상이라 하여 막군치(幕軍峙)라고 불리우던 것이 마운대미로 변화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마도 승리하지 못했던 후백제의 기억들이 민중들의 염원으로 풍수지리설로 다시 태어나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봅니다. "큰바위얼굴"처럼 언젠가 다시 나타날 대장군을 기다리며 대장군이 오길 학수고대하는 민중들의 염원이 한재골 내에 가득합니다.

바로 이런 여러 의미들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우리에겐 더욱 애틋한 추억과 상념의 공간입니다.그런 공간에서 언제부터인지 많은 사람들이 새해벽두 투구봉에 올라 해맞이 행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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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년회장이 고천문을 낭독한 후 초헌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대전면의 평화와 발전을 기원하며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을 올리고 함께 한 모든 분들과 나누는 순간은 얼어붙은 추위도 녹여냅니다. ⓒ 이규현

2005년 1월 1일 지역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한재골을 가꾸며 보호해 나가는데 앞장서고 있는 대전청년회에서 돼지머리와 시루떡을 준비하고 대전면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고천문을 낭송하면서 일동은 천지신명께 엎드려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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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변에 곱게 핀 아름다운 설화 ⓒ 이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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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노령의 준맥들이 보입니다. 굽이굽이 힘차게 꿈틀대며 이곳 저곳의 소망들을 모아 옵니다. ⓒ 이규현

저 찬란한 설화를 가득 안고 있는 노령의 줄기들도 이 순간 모두 머리 조아려 평등과 평화의 밝은 세상 밝혀줄 대장군의 출현과 어느덧 우리네 모습들이 곧 바로 그런 대장군이 되어 있음을 알게해 줄 따사로운 일출로 함께 합니다. 안산으로 당당히 서 있는 무등의 모습은 영산강을 사이에 끼고 더욱 풍요로운 담양들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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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해맞이를 마치고 내려와 모두 함께 떡국을 나누며 덕담을 주고 받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서로에 대한 믿음 가득한 순간들입니다. ⓒ 이규현

골목 골목을 휘집어 나오는 조그마한 물줄기들은 하나로 모여 우리네 염원을 싣고 만경창파 영산의 물줄기로 흘러갑니다. 미움과 증오, 원한과 분노 날려보내며 동 터오르는 새날의 힘찬 빛줄기 가득 안고서 내려오는 길에 서로에 대한 나눔과 섬김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떡국 한그릇은 그 어떤 때보다도 맛있기만 합니다.

추위에 얼어붙은 곱은 손 녹이며 새로운 희망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공동체의 참맛을 반찬으로 먹는 이 순간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상의 첫날입니다. 대전면의 새해는 그렇게 밝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담양군 대전면에 위치한 병풍산 해맞이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을 위해 2006년 새해 아침엔 대전면 대치리 소재 우정식당에서 떡국을 준비하여 대접합니다. 누구나 상관없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2005년에는 대숲마을이라는 식당에서 떡국을 준비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담양군 대전면에 위치한 병풍산 해맞이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을 위해 2006년 새해 아침엔 대전면 대치리 소재 우정식당에서 떡국을 준비하여 대접합니다. 누구나 상관없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2005년에는 대숲마을이라는 식당에서 떡국을 준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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