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200

새로운 시작

등록 2006.01.02 18:19수정 2006.01.0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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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성급하기도 하군. 하지만 이 여진의 글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네. 어떻게 내가 오랑캐 글을 따라 쓸 수가 있나? 진서도 겨우 베껴 적을 정도의 악필이니 어떻게든 뒷글만 적음세.”

“알아서 하라우!”

장판수는 능글맞은 두청의 태도에 슬며시 짜증이 일어났다.

“언문으로 적어주랴?”

“그 정도는 나도 읽을 줄 아니 그대로 적어 내리기나 하라우!”

두청은 느릿느릿 한자 한자를 조심스레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장판수는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두드리며 행여 두청이 잘못 적지나 않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장초관이 여기 있으면 이걸 가지고 누가 한양으로 갈 참인가? 평구로 그 늙은이가 갈 참인가? 훗!”

“최종사관을 보낼 거라우.”

“오… 그래도 말직 감투라도 쓰고 있는 자가 낫다 이거군.”

“거 입으로 글자를 적네!”

두청을 윽박지르는 장판수를 서흔남이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두청은 입가에 웃음만 머금을 뿐이었다.

“다 됐네.”

장판수는 두청을 노려보며 필사된 두루마리를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 최효일을 불렀다. 최효일은 굳은 표정으로 장판수가 건내주는 두루마리를 받았다.

“잘 들으시라우 최종사관. 한양에 당도할 때쯤이면 포로가 심양에서 빠져나간 것을 조정에서도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우.”

최효일은 얕은 한숨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일을 왜 아무런 논의도 없이 덜컥 혼자 결정하였습니까? 두청 저 자가 아무래도 무슨 흉계를 꾸미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장판수는 턱에 힘을 주며 최효일의 귓속에 속삭였다.

“어쩔 수 없지 않네? 이렇게라도 해야 저들이 두루마리를 필사 해 줄 테니 말입네… 이 두루마리를 가지고 이시백 어른을 찾아가시라우. 지금은 병조참판으로 조정에 드나드신다고 하니 좋은 방도를 알려 줄 기라우. 그 어르신이라면 이 두루마리에 쓰인 내용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일을 마무리 지을 기야.”

최효일과 얘기를 마친 장판수는 평구로와 짱대를 불렀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우.”

짱대는 의주에서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평구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여기 있을 것이다.”

장판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보시라우요 어르신. 요 전의 일과 이일로 인해 이미 저들의 눈 밖에 났는데 어찌 버티려고 그러는 겁네까?”

평구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내 집이나 다름없고 이곳의 하인들은 날 잘 따른다. 두청이 비록 좋게는 생각하지 않겠으나 늙은 나를 구태여 어찌 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나라도 여기 있어 보고 있어야만 두청이 자네를 함부로 해코지 못할 것이 아닌가?”

육태경을 비롯해 심양으로 잡혀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사람들은 하나씩 장판수의 손을 부여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꼭 찾아오라며 지니고 있던 호패를 쥐어 주기도 했다.

“정말 나중에 우리 고향으로 한번 놀러 오시소! 동네잔치를 벌일 테니까!”

“허, 이 사람들 낯부끄럽게 왜들 이러나! 내래 이러려고 한 일은 아니라우.”

장판수는 쏟아지는 사람들의 칭송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두청은 멀리 뒤에 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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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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