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오마이뉴스 남소연
먼저 주한 미국 대사관측이 작년 12월 26일에 쓴 제 기사에 대해 반론을 보내주신 점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쪼록 이번 논쟁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민을 이해를 돕고, 미국의 정책이 전향적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 대사관이 보내온 반론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및 유통에 대해 미국은 "결정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2차 북핵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도 갖고 있으며, 셋째는 "미국은 이런 문제들을 평화적 대화와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북한의 위조지폐 문제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 정부나 한국의 국정원에서 제시한 근거를 포함해 북한의 위폐 제조 및 유통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앞선 기사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북한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태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미국 정부는 북한의 위폐 문제를 최근에서야 본격 제기하게 된 이유로 최근 북한의 위폐 제조 및 유통이 예전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제시했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의혹을 왜 이 시점에 제기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미국 대사관에서 근거로 제시한 국정원 보도 자료(No. 11132, 13321)는 1999년 12월에 배포된 것입니다.
협상을 마다하는 이유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위폐 논란과 관련해 '문제 해결 지향적인 모습'이 아니라 이를 근거로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려는데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줄곧 북한의 위폐 문제 및 이에 대한 금융제재는 법 집행에 해당하는 것으로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브시바오 대사의 "범죄정권" 발언은 이러한 미국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따른다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등 국제법과 미국의 비확산 관련 법을 위반한 북핵 문제도, 일본인 납치 문제도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미국 스스로 수많은 국제법과 타국의 법을 위반·무시해온 점에 대해서도 할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입니다. 저는 앞선 기사에서 북미 양측이 '협상'을 통해 북한은 위폐 의혹을 해소하는 한편 국가차원에서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미국은 위폐로 인해 달러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고, 6자회담도 재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화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미국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만 미국의 의도에 대해 많은 한국민들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쉽사리 구한"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
다음으로 우라늄 농축 문제 등 북핵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명백히 NPT와 남북공동성명, 북미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 선언까지 가는데 미국 측 책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핵보유 선언 자체가 NPT 및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NPT 조약을 보면 자국의 최고 국가이익이 침해받을 때 이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잘잘못을 떠나 북한은 2003년 1월에 NPT에서 탈퇴했습니다. 또한 제네바 기본합의는 부시 행정부가 사실상 먼저 파기를 선언했습니다. 탈퇴한 조약을 위반했고, 상대방이 파기한 합의를 위반했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이 선언을 위반했다고는 볼 수 있겠지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더 심합니다. 미국 대사관은 이와 관련해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파키스탄 과학자 A.Q. 칸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지원한 적이 있음을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독일 언론이 이 프로그램에 필요한 여러 부품과 자재 확보를 위한 북한의 노력을 상세히 보도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미국 국무부는 2004년 12월에 "2002년 여름에 강력하고 명백한 증거를 입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2002년 여름이 한참 지난 2002년 11월 22일에 CIA는 미 의회에 보낸 메모에서 "우리는 최근까지 북한이 원심분리기 시설의 건설을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둘 사이의 '중대한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또한 독일 언론 보도는 북한이 2003년 4월 독일 회사로부터 약 22톤의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수입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러한 시도는 독일, 프랑스, 이집트 당국에 적발되어 좌절되었다는 것이 당시 미국 관리들의 주장입니다. 북한이 대량의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수입하려고 했는지 또한 그 용도가 원심분리기 제조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입이 좌절된 것을 근거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칸 박사가 북한에 원심분리기를 지원했다는 것을 무샤라프 대통령이 인정했다는 것 역시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2002년 10월에 미국이 이러한 의혹을 제기했을 때 무사랴프는 부인한 바 있습니다. 이후 그가 말을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무사랴프의 발언에 따르더라도 파키스탄이 제공한 원심분리기는 몇 개 수준입니다. 원심분리기 몇 개를 가지고 핵무기를 제조하려면 1백년 가까이 걸립니다. 이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갖고 있더라도 연구 개발(R&D)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실체도 불분명하고 긴박한 문제도 아닌 우라늄 농축 문제에 매달리면서 북한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었습니다. 그 사이에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아니라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이용해 핵물질을 차곡차곡 쌓아왔고 핵보유 선언까지 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비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다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저는 북한의 위폐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이러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협상을 통해 위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없다"는 초강경 태도는 우라늄 농축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이 취한 태도와 거의 같고, 그 결과는 미국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게 될 것입니다.
미국이 또 다시 대북한 비타협주의를 고수한다면 6자회담의 재개 및 성과 도출은 불가능해집니다. 이 사이에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아니라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통해 핵무장 능력을 배가시켜 나갈 것이고, 이는 미국 대외정책의 최대 오점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한국민이 미국에게 바라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선의와 진정성을 가지고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달라는…. 특히 알렉산더 브시바오 대사는 "범죄정권" 발언을 비롯한 최근 언행에 대해 왜 많은 한국민들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6자회담이 성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달성되는 날, 저를 비롯한 많은 한국민들은 미국을 새롭게 볼 것입니다. 그리고 브시바오 대사를 비롯한 미국 대사관이 이러한 노력에 앞장설 때, 미국 대사관 앞에는 시위대가 아니라 꽃다발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부디 건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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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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