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앞둔 노병, 반세기 만에 무공훈장 찾아

6.25 참전 박기배옹 "내 생애에 가장 값진 선물"

등록 2006.01.12 22:10수정 2006.01.12 22:09
0
원고료로 응원
박찬웅 울산연대장에게 훈장을 전달받는 박기배 할아버지.
박찬웅 울산연대장에게 훈장을 전달받는 박기배 할아버지.조수일
"군번 0101054 이등중사 박기배.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값지고 귀한 선물입니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우고 무공훈장 대상자로 결정되었으나 그 동안 훈장을 찾지 못했던 팔순을 바라보는 노병이 반세기만에 화랑무공훈장을 가슴에 달고 그 동안의 회한을 달랬다. 주인공은 6.25 참전용사인 박기배(78·울산시 남구 삼산동) 할아버지.

박 할아버지는 12일 오후 집을 방문한 육군 제53보병사단 울산연대장(대령 박찬웅)에게 화랑무공훈장을 건네받아 말로만 들었던 훈장을 마침내 가슴에 품었다.

박 할아버지는 1950년 8월 22살의 나이로 고향인 경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입대 영장을 받고 대구에 있는 1교육대에서 3일간 기초적인 군사훈련만 받고 1사단 11연대에 배속되는 날 밤부터 팔공산전투 참전을 시작으로 문산, 연천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여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평안북도 박천까지 북진할 때는 통일이 되는 줄 알았는데 중공군의 참전으로 눈물을 머금고 후퇴할 때는 정말 가슴 아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반세기 만에 찾은 훈장이 이 겁니다.
반세기 만에 찾은 훈장이 이 겁니다.조수일

특히 1952년 연천의 '베티고지' 탈환 전투에서 선두에서 돌격하다가 머리에 수류탄 파편상을 입었지만 긴박한 전선사정으로 다시 참전하기를 여러 번. 파편을 다 제거하지 못한 채 반세기가 넘은 세월동안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왔다. 최근에는 건강마저 악화되고 백내장을 앓고 있어 문밖출입이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군번과 전쟁 당시의 상황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52년 전에 저는 이렇게 젊었습니다.
52년 전에 저는 이렇게 젊었습니다.조수일
"충북 진천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중대장을 비롯한 중대원 거의가 전사했던 게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라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1954년 4월에 훈장수훈자로 결정되었으나 7월에 전역한 할아버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내다가 지난 해 8월 울산지방 보훈청으로부터 국가유공자로 확인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육군본부에 수훈 확인을 요청, 이번에 훈장을 찾게 되었다.


"50년 넘게 모르고 지내다가 뒤늦게나마 훈장을 찾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자식들에게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고 말했다.

한편 무공훈장을 받으면 관할 보훈청에 등록절차를 거쳐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며 65세 이상 생존수훈자들에게는 매월 8만원의 '무공명예수당' 지급과, 가구 당 2인의 취업보장, 생업 및 주택자금의 저리융자, 보훈병원 진료시 할인혜택, 사망시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울산연대 관계자는 "앞으로도 가용한 방법과 모든 방안 등을 동원하여 무공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 무공수훈자와 호국영령들의 명예를 드높일 계획"이라며 "이들이 국가유공자 예우와 보훈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