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희 시집-오리막오리막
자서(自序, 지은이가 책머리에 적는 서문)에 의하면 그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때까우(떼로 몰려다니는 거위), 기러기, 토끼, 닭, 강아지와 함께 사 년째 살고 있다. 그 생활 속에서 얻어진 서정시 60편이 새 시집 <오리막>을 구성한다. 첫 시집에 비해 한층 섬세해진 감각으로 농촌 풍경에 내장되어 있는 삶의 깊은 슬픔을 독특한 시선과 문체로 그려냈다.
시집 <오리막>은 마치 동식물과 온갖 사물을 담고 있는 박물지(자연학적인 지식을 집대성한 일종의 백과사전) 같은 풍경을 이룬다. 그의 시에 나오는 그것들을 열거해보면 억새꽃, 토란, 우렁이, 감나무가 있는 빈집, 오리막, 콩잎, 살무나무 할아버지, 백하, 굴뚝새 그 집, 산취, 그리운 호박벌, 거시랑불, 가물치, 귀신사 검은 대나무, 버럭지 복숭아, 어미쥐, 볏짚 속의 고양이, 귀룽나무, 까치집, 중태기, 대숲, 밤벌레, 겨울 송사리, 저녁똥 등 다양하다. 이들은 그의 시 제목들이다.
유강희 시인의 시 세계는 그러한 농촌 풍경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물과의 소박한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대화 속에서 시인은 과거 풍요로웠던 농촌 풍경에 비해 ‘폐문’(閉門)과 같이 적막하기 그지없는 현재 농촌 풍경을 애틋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식 일곱을 뽑아낸 이제는 폐문이
되어버린 우리 어머니의 늙은 자궁 같은
오래된 돌확이 마당에 있네
귀퉁이가 떨어져나가고 이끼가 낀 돌확은
주름 같은 그늘을 또아리처럼 감고 있네
황학동 시장이나 고풍한 집 정원에는 제법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받아먹고
눈이 오면 또 그냥 눈을 받아먹으며
뿌리를 내릴 생각도 않네
뿌리 대신 앉은 자리엔 쥐며느리들만
오글오글 세월처럼 모여 사네
하지만 싸릿재 저수지에서 잡아온 새끼 우렁 하나
돌젖을 빨아먹으며 자라고 있네
돌젖에 눈물처럼 금이 가 있네
- ‘돌확’ 전문
인용한 시에서 ‘돌확(돌을 우묵하게 파서 절구 모양으로 만든 물건)’은 피폐화되고 생명이 꺼져가는 오늘날 우리 농촌 풍경의 상징이다. 돌확은 우리의 먹거리를 만드는 생산의 곳간이다. 그런데 폐문이 되어버린 우리 어머니의 늙은 자궁, 귀퉁이가 떨어져나가고 이끼 끼고 금이 간 돌확으로 그려져 있는 오늘날 우리 농촌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나팔꽃 작은 손이 빗방울을 털며
무어라고 고시랑거리는 저녁 무렵
나는 오리 울음소리 들으러 오리막 간다
(중략)
나도 네 오리발 하나 빌려 신고 버드나무 방죽을 찾아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물 속을 뒤지며 쏘다녀보고 싶다
그 물 속에는 마을이 있고 절룩발이 할아버지가 있다
- ‘오리막1’ 부분
30대 후반 또래 시인들과 비교하면 유강희의 시 세계는 좀 특별나다. 인용한 시에서도 볼 수 있듯, 스러져가는 농촌 풍경을 애틋하게 끌어안고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서사적으로 풀어나가는 그의 시적 어법은 30년대 백석(1912-1995)과 이용악(1914-1971)의 시를 연상케 한다.
황량한 농촌 풍경과 또 그것을 극복하고자 제시하는 시인의 주된 제재는 ‘우물’이다. “그 많던 우물들은 대체 어디로 다 사라진 것일까. 귀한 것 천한 것 없이 온갖 것들을 다 먹여주고 품어주던 하늘로 열려 있던 생명의 물길, 우물. 나는 오늘도 그 잃어버린 시의 우물을 찾아 더 깊은 곳에 두레박을 던진다”(책 후기 ‘시인의 말’)는 시인의 의지는 소중하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농촌 풍경에 얽힌 슬픔과 죽음의 세계’를 서사적으로 그려낸 여타의 시보다 ‘이슬의 집’ ‘童謠調’(동요조) ‘공기밥꽃’ 같은 짧은 시편들에 더 오래 눈이 머문다. 다음 시집에서 유강희 시인이 펼쳐 보일 시 세계가 궁금해진다.
달개비꽃 밑에
여인숙 치는
여치
숙박계도 안 쓰고
하룻밤 자고 가는
이슬
하늘일까
지상일까
이슬의
집
- '이슬의 집' 전문
오리막
유강희 지음,
문학동네, 200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