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50회

등록 2006.01.19 08:18수정 2006.01.1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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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물살에 휘말리며 그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는 것을 느꼈다. 숨을 쉬려하다가 두어 모금의 물도 억지로 삼켜야 했다. 숨이 차오르자 그는 몸을 새우처럼 웅크렸다가 바닥을 박차며 위로 빠르게 떠올랐다.

“푸---우---!”


이미 물은 천정 가까이 차올랐다. 그는 얼굴만 내놓고 숨을 한 모금 들이킨 뒤에 정신을 차리며 물 속을 보았다. 희끗한 물체가 뱅뱅 돌고 있었다. 그는 급히 물속으로 들어가며 손을 휘저었다. 다행스럽게 묵직한 뭔가 걸렸지만 그에 따라 담천의도 물살에 세차게 휩쓸렸다.

그렇다고 뭔가 잡을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궁정천이 왜 손을 벽에 박고 견디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를 꽉 옥죄었다. 백결인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움직이는데 여간 제약을 받는 게 아니었다.

물에 빠진 사람 곁에는 사실 가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정신을 잃거나, 정신을 잃게 만들어서 구해내야 한다. 섣불리 다가갔다가 잡히면 자신마저도 빠져 나오기 힘든 것이다. 무의식 상태에서도 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떼어내기 어렵다.

(우… 훅…!)

담천의 역시 다급해졌다. 자신의 몸 하나라면 어떻게 하던 움직여 보겠는데 허리를 잡고 있는 백결로 인하여 세찬 물살에 속절없이 휘말리고 있었다. 다행히 등에 벽이 스치는 것을 느끼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오른손을 빳빳하게 세워 벽에다 박았다. 깊이 박히지는 않았지만 물살에 속절없이 휘말리는 것을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그는 백결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았다. 다행히 놓아도 백결이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었기 때문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왼손 역시 빳빳하게 세워 위쪽 벽에다 박았다. 일단 천정까지 물이 찼는지는 모르지만 숨을 쉬기 위해서는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는 손가락과 손목에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벽을 타고 올랐다. 하지만 이미 천정까지 물이 찬 상태였다. 석실 안에는 공기 한 점 없었다. 숨을 참기 어려웠다. 정신이 아득해왔다.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차라리 밑으로 내려가 입구를 찾았다면 더 빨랐을 터였다.


그는 일순 절망감을 느꼈다.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숨을 참는 고통은 너무나 참기 힘들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박았던 석벽 구멍을 찾아 손을 끼워 넣으며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순한 내공도 이때는 소용이 없었다. 귀식법(龜息法)이란 것도 공기가 있는 상황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최소한의 숨으로 오래 버틸 수 있는 무공의 일종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귀식법을 운용해 대처했다면 모르되 이런 상황에서 귀식법을 펼친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이토록 맹렬한 물살에 대항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답답하여 입을 벌리는 순간 코와 입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간의 몸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

그때였다. 물살이 급하게 한쪽으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빨리 내려가기 위하여 이미 박았던 구멍을 잡고 내려가던 담천의의 손이 미끄러지며 급한 물살 속에 휘말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물거품 사이로 바닥 한 곳에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구멍이 보였다. 그 안으로 물이 소용돌이치며 세차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급격하게 물살을 타고 그와 그의 허리를 잡고 있었던 백결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 헉…!)

그의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의식의 끝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빠져 들면서 그는 급한 마음에 이빨 사이에 혀를 끼워 깨물었다. 찝찔한 핏물이 입안에 고이고 있었지만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석실에 차 있던 물이 빠져나갔다.

끼이--- 끼이익----

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일시적으로 생겼던 구멍이 닫혀 지고 있었다. 담천의와 백결을 삼킨 물은 이미 다 빠져 나간 뒤였다. 움푹 패인 바닥에 벽에서 흘러내린 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

구효기의 꽉 쥐여진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의 실수였다. 이런 일은 진작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했다. 아니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어도 최소한 믿을 수 있는 인물 한두 명은 호위로 붙여 놓았어야 했다.

천궁문(天弓門)의 문주 단세적(端洗積)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일기(唐逸奇)가 만들어 온 암기통을 매달아 하늘을 날고 있는 수리들 대부분을 없앴다. 어디선가 다시 나타난 십여 마리가 날고는 있지만 오늘 밤에 다시 쏘아 떨어뜨리면 내일은 외부와 연락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외부와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고립감을 군웅들의 마음속에서 떨쳐낼 수 있을 것이었다. 천마곡으로 진입한 이후 일방적으로 수세에 있다가 이제 반격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기였다. 헌데 이 중요한 시기에 심각한 일이 터진 것이다.

천궁문(天弓門)의 문주 단세적(端洗積)은 자신의 천막 안에서 죽어있었다. 그는 매우 유용한 인물이었다. 전서구를 사냥하는 수리들을 없애는 일뿐 아니라, 혼전 중에 격살시켜야 할 상대를 골라 죽이는데도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화살에 불을 붙여 화공(火攻)을 하는데도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이었다.

“…….”

그런 그가 죽은 것이다. 그는 탁자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었는데 탁자위에는 마시다만 자신의 찻잔이 나뒹굴고 있었고, 찻물이 엎질러져 있었다. 옆에 놓여진 다기(茶器) 마저 쓰러지면서 손으로 쳤는지 깨진 상태였다.

그 앞으로 찻잔이 세 개가 놓여 있었는데 두 개의 잔은 한쪽으로 밀려져 있었고 하나 만이 단세적이 앉아있는 맞은편에 놓여 있었다.

단세적이 죽어있는 상황은 사인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차를 마시다가 살해를 당했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했다. 적이나 외부의 침입자가 아닌 단세적과 차를 나눌 정도의 안면이 있는 내부인물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것은 우려했던 대로 내부의 적이 있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단세적이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고수라는 점도 중요한 단서였다. 단세적의 사인은 조심스럽게 살펴 본 결과 심장부위와 목줄기, 그리고 미간에 꽂힌 매화침(梅花針)이었다. 사실 매화침은 암기를 사용하는 인물이 아니더라도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웬만한 무림인이라면 다룰 수 있는 흔한 암기였다. 하지만 이토록 정확하게 세군데 사혈을 적중시키는 것은 전문적으로 암기를 다룬 자가 아니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단서는 세 개의 찻잔이 놓인 위치였다. 두 개의 찻잔이 옆으로 몰려 치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네 사람이 동시에 탁자에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들어와 담소를 나누고 돌아간 후에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이런 야전이 아니라 천궁문이었다면 먼저 온 손님의 찻잔을 내가고 새로 들여왔을 터였지만 임시 천막을 거처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것에 구애받을 인물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누가 이곳에 있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했다.

한편 간과하지 못할 또 한 가지의 단서는 단세적이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당한 모습이어서 오히려 의아심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과연 단세적이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한 이유가 단지 상대가 너무 고수였고, 기습적이어서 손 쓸 시간조차 없었느냐는 점이었다. 상대를 아무리 믿었다 하더라도 단세적은 무시하지 못할 고수였다. 이렇듯 얌전히 죽을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구효기는 분노와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천궁문의 부문주인 무진권(武振拳) 목득(沐淂)을 보며 물었다.

“단문주를 찾아 온 분들이 많았던가?”

무진권 목득은 어려서부터 싸움을 잘하는 파락호였다. 그러다 이곳저곳의 권법을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싸움을 하기위한 실전적인 권법을 만들어 익혔고, 천궁문이 있는 장사(長沙) 지역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던 자였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던 단세적이 천궁문으로 끌어 들였고, 마음을 고쳐먹은 목득이 불철주야 천궁문을 위해 신명을 다하자 단세적이 의형제를 맺고 부문주로 삼은 인물이었다.

“꽤 많았소. 오후에 형님이 이루신 쾌거를 듣고 찾아오신 것 같았소.”

천궁문에 있으면서 무림에 위명이 쟁쟁한 거물들의 방문을 받은 적이 드물었던 터라 흥분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단세적의 진가가 무림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일이었을 뿐 아니라 천궁문이 대문파로 도약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도 한 몫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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