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이란이 핵농축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이같은 핵프로그램을 유엔안보리에 회부해 제재를 가했을 때 그 결과를 책임지라고 경고한 가운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오른쪽) 이란 대통령이 이란 측의 핵제안을 들고 유엔총회에 참석하러 출발하기 전 최고 종교지도자인 모하마드 모하마디 골파예가니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AP 연합뉴스
2002년 12월 29일,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부시 행정부가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구상은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협상을 하지 않고 동시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여건과 가공할 피해 발생 가능성으로 인해 군사행동도 배제하면서, 북한의 국제적 고립과 정치적·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데 초점을 두는 전략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구상한 구체적인 대북 봉쇄정책은 ▲유엔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 및 북한 고립 ▲북한의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 수출에 대한 군사적 봉쇄 ▲한반도 주변국가의 대북 경제교류 축소 ▲미국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 중단 ▲마약, 위조지폐 생산·유통을 통한 외화수입원 차단 등이다. 이는 북한의 경제난을 가속화시켜, 북한의 굴복 내지 붕괴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계획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반발과 외교적 해결을 주창한 중국 및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는 듯 했다. 뒤이어 2003년 4월 북-미-중 3자회담이 열리고, 8월부터는 6자회담이 시작됨에 따라 '맞춤형 봉쇄'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여기에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반격으로 발목이 잡힌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책을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이 구상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이를 실행해왔다. 북한 등 "깡패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수출을 저지한다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마약 및 위조지폐 유통과 무기수출 혐의를 근거로 한 금융제재,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 중단, 남북경협 제한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도구 모음(tool kit)'으로 명명된 대북 제재 방안을 만들었다. 2005년 2월 14일 뉴욕타임즈의 보도로 그 실체가 알려진 이 계획은 미국이 알-카에다에 사용한 방법과 흡사한 방식으로 북한의 돈줄을 끊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마약, 위조지폐, 무기 수출 등을 통해 김정일 정권이 벌어들이고 있는 외화를 추적·동결해 북한의 경제적 동요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1기 때의 '맞춤형 봉쇄'가 2기 들어 '도구 모음'으로 구체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북제재 방안은 네오콘의 수장격인 딕 체니 부통령과 '실세 대북강경파'인 조지프 국무부 차관의 작품이다. 협상은 하기 싫고, 군사 행동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내부 동요와 경제 불안을 야기해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위기의 불씨, PSI
대북 봉쇄 방안으로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이 바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다. 부시 대통령이 2003년 5월 발표한 이 구상은, 대량살상무기(WMD) 부품과 물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이나 항공기를 육·해·공에서 나포 또는 제지한다는 개념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 대부분이 국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PSI는 2004년 초까지 개념 구상 단계에 있다가, 그 해 4월부터 실전 단계로 돌입한 상황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2004년부터 주요 타깃으로 북한을 직접 거명하기 시작했고, 2004년 10월 일본의 도쿄만 앞바다에서 '팀 사무라이 2004'라는 이름을 달고 실시된 훈련에 참석한 존 볼튼 국무부 차관은 "육·해·공 어디든 관계없이 당신(북한)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사업을 중단하거나, 공포의 화물이 중간에 나포되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양자택일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PSI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이 구상에 대해 국제적 지지와 참여를 요구해온 부시 행정부가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유엔 등 국제기구와 중국, 러시아 등 여러 국가들은 PSI가 국제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으며, 미국의 패권주의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미국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 구상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얼마나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느냐를 대외관계의 우선 순위로 삼으면서 많은 국가들이 이 구상을 묵인 내지 동조하고 나섰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부시 행정부는 2004년 4월 28일 일부 국가들과 국제 NGO의 반대를 뚫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540을 채택하는데 성공했다.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공동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결의안을 가지고 부시 행정부는 PSI의 국제법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2005년 가을부터 북미관계의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한 북한의 위조지폐 생산·제조 혐의에 대한 금융제재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안보리 결의안 1540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의 불법적인 외화 수입을 통해 대량살상무기 개발·생산에 이용하고 있다는 논리이다.
PSI 참여국을 늘리려는 부시 행정부의 행보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최소한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을 얻어내려는 설득과 압박을 병행하는 한편, 한국 등 비참여국가들에 대한 압박도 높여가고 있다. 일례로 PSI의 핵심적인 설계자이자 국무부에서 이를 총괄하고 있는 로버트 조지프 차관은 2005년 8월 한국을 방문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외교통상부, 통일부 등 핵심적인 고위 관계자를 만나 PSI 동참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한국은 PSI 참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또한 조지프는 10월에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해 이들 국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조지프는 중앙아시아의 영공이 북한과 이란의 항공기가 오가는 항공로라는 점을 들어, 북한과 이란 사이의 무기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는 PSI를 통해 북한 등 "대량살상무기 보유 국가들 및 테러집단"의 확산 행위를 크게 줄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PSI가 공식 발표된 2003년 5월 이후 아직까지 북한의 선박이나 항공기가 WMD 수출 혐의로 제지되거나 나포된 사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I는 '위기의 불씨'를 안고 있다. 2002년 12월 미국이 스페인과 함께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 '서산호'를 나포했던 사례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플루토늄 양이 늘어나고 있어 미국이 핵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봉쇄를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돈줄을 끊어라"
PSI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군사적 도구라고 한다면, 경제제재는 북한의 외화 유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경제적 도구에 해당된다. 이와 관련된 경제제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WMD 거래 혐의가 있는 북한의 기업에 대해 자산 동결 및 거래 중지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간헐적으로 북한 기업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했던 미국은 2기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그 수위를 크게 높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시 대통령은 2005년 7월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동해 WMD 거래 혐의가 있는 기업들에 대해 제재 조치를 승인했다.
이러한 행정명령을 근거로 부시 행정부는 2005년 10월에 8개의 북한 기업에 대해 자산 동결 및 거래 중지 조치를 단행했다. 아울러 부시 행정부는 제재를 부과할 추가적인 북한 기업을 물색하는 한편, 다른 나라들에게도 미국과 흡사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 기업에 대한 제재가 WMD 거래 혐의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제재는 북한의 마약, 위조지폐, 위조담배의 생산 및 유통과 무기수출 혐의에 근거를 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중순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은행에 대한 제재에 돌입했고, 추가적인 제재 대상도 물색하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 중단
'맞춤형 봉쇄'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축소 내지 중단이었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 규모를 클린턴 행정부 때의 약 10분의 1로 줄였고, 그나마 올해부터는 전면 중단했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 지원을 중단한 이유를 북한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과 비정부기구(NGO)에게 철수를 요구함에 따라, 대북 지원 창구가 없어졌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WFP에게 인도적 지원에서 개발 원조로 전환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 요청이 수용되지 않자 WFP 등 인도적 지원 기구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속사정은 복잡하다. WFP는 작년 들어 북한에게 완전한 접근성과 식량 분배 감시 활동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WFP가 2004년까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분배의 투명성과 접근성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한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태도였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대북 지원 활동가들의 전언이다. 즉, 미국은 2004년 10월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직후부터 WFP에게 대북 지원의 투명성을 강하게 요구했고,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WFP가 북한에게 이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맞춤형 봉쇄'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이처럼 북한에 대해 협상보다는 제재와 봉쇄를 선호해왔던 부시 행정부의 의도는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중국이 제재와 봉쇄에 동참하지 않는 한, 그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북한은 식량 증산을 비롯해 최악의 경제난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고, 미국의 전략물자통제체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희망과는 반대로 북중관계는 밀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강경파들은 대북 제재와 봉쇄를 선호해온 관성을 계속 유지할 공산이 크다. 이들은 PSI와 금융제재 등 구상 단계에 있던 봉쇄와 제재 정책들이 실행되고 있기 때문에, '북핵 관리' 및 외화 수입 차단이 가능해졌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향후 한국과 일본에서 대북강경파가 정권을 잡으면, 한미일 삼각체제에 기반을 둔 본격적인 대북강경책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 상황을 보면, 일본에서는 대북 초강경파인 아베 신조가 고이즈미 총리의 뒤를 이을 공산이 크고, 2007년 한국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글은 '부시, 북핵 해결 의지 애초부터 없었다'는 주제로 북핵 재발 초기부터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인식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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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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