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아이들, 왜?

[주장]빗나간 아이들은 전부 부모 책임, '인'의 덕목 가르쳐야

등록 2006.01.31 09:28수정 2006.01.3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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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19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100억 원대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한약상 부부가 침실에서 47회나 칼에 찔린 채 숨졌다. 범인은 부부의 아들 박한상(당시 23세). 외국 유학 중 술과 마약, 섹스와 도박으로 37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던 그는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부모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으나 종아리에 난 상처(아버지의 이빨자국)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 사건 이후 정식 보고되고 있는 기록을 보면 매해 40여 건 이상의 존속살해사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 글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SBS의 솔루션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시>를 통해본 가정폭력의 문제와 아울러 자식 키우는 평범한 아비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피력한 것이다.


일화 하나, 거리에서 만난 폭력

a 이 사진 찍으면서 솔직히 두려웠다. 저 아이가 부스에서 튀어나와 멱살잡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 아이를 보며 그냥 넘겨도 좋을, 남의 일 같지 않아 셔터를 눌렀다.

이 사진 찍으면서 솔직히 두려웠다. 저 아이가 부스에서 튀어나와 멱살잡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 아이를 보며 그냥 넘겨도 좋을, 남의 일 같지 않아 셔터를 눌렀다. ⓒ 이동환

지난 27일. 설 연휴를 앞두고 나는 평소처럼 학원에 출근하기 위해 동네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어디선가 고래고래 질러대는 욕설이 들려왔다. 좋은 명절 앞두고 누가 싸우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공중전화부스를 주목했다. 잘 해야 나이가 열여덟이나 아홉쯤 되었을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악다구니치는 욕설의 진원은 바로 그 아이였다.

“야 이, 씨○○아! 오늘까지 돈 안 부치면 씨○, 내가 죽여 버린다고 했지?”

섬뜩했다. 도대체 누구와 통화하기에 거리에서, 오고가는 사람들 따위 아랑곳도 없다는 듯 분노를 표출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저 성질 못 된 젊은 치의 광기려니 했다. 내가 정말 놀란 이유는 통화 대상이 그의 어머니라는 사실이었다.

“엄마고 뭐고 씨○! 내가 낳아달라고 했어? 여태 해준 게 뭐 있는데? 이런 씨○○! 너 진짜 죽을래? 잔말 말고 내 성질 알지? 한 시간 안에 돈 안 부치면 끝장날 줄 알아!”


듣고 있을수록 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게 정녕 자식이 어머니에게 하는 소리란 말인가? 통화가 계속되는 20여 분 동안 나는 버스를 세 대나 그냥 보내며 그 자리에 붙박였다.

일화 둘, TV에서 <긴급출동 SOS 24시>를 처음 보던 날의 충격


a SBS 솔루션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시> 홈페이지 캡처

SBS 솔루션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시> 홈페이지 캡처 ⓒ SBS

우연히 처음 프로그램을 접한 날 사연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군대까지 무사히(?) 갔다 온 20대 중반의 청년이 고등학교 2학년인 남동생을 허구한 날 폭행하는 것도 모자라 중학생인 여동생을 성욕해소용으로 삼아버린 사건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상해를 입고 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 몫으로 매달 얼마씩 나오는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고 다니며 아무렇지도 않게 근친상간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이 파열될 정도로 남동생을 폭행하던 그. 결국 남동생이 <긴급출동 SOS 24시> 게시판에 도움을 호소하면서 동생들의 끔찍한 비극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 특히 가정폭력이다. 얼마나 흔하기에, 얼마나 심각하기에, TV 정규프로그램으로 이 문제가 다뤄지느냐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식이 부모(가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나는 안타까움과 관심이 크다.

일화 셋,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 손가락을 부러뜨린 제자

몇 년 전, 80평이 넘는 큰 아파트에 사는 부잣집 외동아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해 고 3이었던 녀석을 만났다. 내 평생 왕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 녀석이 내가 처음 만난 왕세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문제는 그 어머니에게 있었다. 아이 이름을 직접 부르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듣기에도 부담스러운 콧소리를 섞어 "아들! 우리 아들? 선생님 오셨어. 어디 있을까…, 우리 아들?" 할 때마다 이건 아닌데, 싶었다.

어느 날.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한참 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받았다. 아이 방이 현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방에 있으면서도 나와 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왼손에 잔뜩 깁스를 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날 아침, 아이 행태를 보다 못한 어머니와 아이 간에 말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자식 나이 스물이 가까워오도록 오냐오냐하며 키웠던 어머니가 대판, 녀석에게 해댄 모양이었다.

급기야, 바락바락 성질을 부리다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녀석 뒤를 따라가던 어머니가 문틀에 손을 댄 찰나, 녀석이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어머니 손가락은 엄지를 제외하고 몽땅 부러지고 말았다. 녀석은 어머니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제 부아를 못 이기면 어머니를 밀치거나, 심하게 내동댕이치거나,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는 일이 잦았다는 사실이다.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 얘기를 직접 듣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자꾸 폭력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부모 책임이다. 인성교육을 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린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 경제개발 우선주의로 인해 지난 30여 년 이상 왜곡된 인간주의, 1등만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와 경쟁에서 뒤처지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세태, 돈이 만능이 되어버린 철저한 물신주의 풍토, 그밖에 심리학이나 역사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듯, 그 이유는 많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단다. 그러나 반면에 "제 새끼 저나 귀엽지 남도 귀엽나?" 하는 말도 있다. '남도 귀엽나' 하는 말 속에는, 자식이 귀여울수록 훈육을 시켜 밖에 내보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아이들 교육이 공동의 문제였다. 심하게 벗나가거나 패륜을 저지르는 자식이 있을 경우, 부모 동의 없이 멍석말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막에는 길에서, 엇나가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했다가는 오히려 봉변을 당한다.

왜일까? 왜 이렇게 우리 아이들이 손도 못 댈 정도로 포악해졌을까? 내 자식만 최고로 키우겠다는, 빗나간 부모들의 태도가 아이들을 망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만 잘 하면 된다고, 대학에만 가다오, 하며 아이들을 부추겨 품성이나 도덕을 가르치기는커녕 오냐오냐 등짝만 두드린 결과다. 교육과 사회 시스템이 잘 못 되었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은 변명일 뿐이다. 망가진 아이들은 십중팔구 그 부모가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음식점에서 너무 자주 마주치는 풍경.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녀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무관심이다. 성정 상 그런 꼴을 못 보는 나는 "이놈들!" 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야단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맞닥뜨린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러세요?" 하며 항의한다. 그 정도는 양반이지. 어떤 엄마는 "애도 안 키워보셨어요? 애들이 다 그맘때 뛰고 그러지. 아저씨가 뭐예요?" 하며 따진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분노를 참지 못한다. 뭐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이루어지는 줄 알고 자란 아이들이 어찌 남을 생각할까. 살다보면 참지 못할 일은 너무 많다.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가 '참지 못하는 성정'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어려서부터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 당연히 크다. 다른 문제는 이차적이다.

인간(人間)은 인간(忍間)일 때 진정한 인간이다

사춘기 이전에 아이들을 바로 잡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감당도 안 되고 걷잡을 수 없다. 어려서부터 예절과 규범, 그리고 참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크게 잘못했을 때는 당연히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따끔하게 가르쳐야 한다. 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지, 화가 나도 왜 참아야 하는지, 뼈에 새기도록 가르쳐야 한다. 내 자식 기죽이지 않겠다고 오냐오냐 키웠을 때, 커서 부모 말도 듣지 않음을 왜 깨닫지 않는가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은 '참을 인(忍)'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기야 가벼운 접촉사고라도 날라치면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으며 상대운전자를 윽박지르는 어른들부터 참음이 무엇인지 모를진대, 그 자식에게 과연 참을성을 가르칠까?

2천여 년이나 나라 없이 살았지만 1948년, 보란 듯 조국을 재건한 이스라엘 민족. 물론 그 이면에는 여러 복합적인 국제역학구도가 있다지만 여기서는 논외다. 떠돌아다니면서도 그 오랜 세월 동안 혈통과 언어, 그리고 문화와 민족정서를 지켜낸 그들의 힘이 가정교육에 있다는 사실은 물어보나 마나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경과 탈무드를 읽어주고, 아이가 자라서 말 할 때쯤 되면 직접 읽게 하고, 내용을 요약하게 하고, 좀 더 크면 부모와 함께 그 내용을 토론하며,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덕목과 법도, 규범, 배려를 가르쳤기에, 성경의 가르침대로 회초리를 들었기에 그들의 국가재건은 가능했다.

내 자식 귀엽다고만 하지 말고 이제, 고대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었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충고에 귀 기울일 때다. 논리 비약이 심할지 모르지만, 희대의 패륜 범죄를 저질렀던 박한상이 같은 아이들이 매해 40여 건 이상 존속살해사건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내 자식은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장담하지 마시라. 집에서, 부모가, 제대로 참음의 덕목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부터 큰소리칠 자격 없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언 13장 24절, 楚撻 : 어버이나 스승이 자식이나 제자의 잘못을 징계하기 위해 회초리로 볼기나 종아리를 때림).

덧붙이는 글 | 참고로, 저는 현재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의 시편, 잠언, 전도서 등, 세 권의 책이 평생 읽은 그 어떤 책보다 제 성품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고백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참고로, 저는 현재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의 시편, 잠언, 전도서 등, 세 권의 책이 평생 읽은 그 어떤 책보다 제 성품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고백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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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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