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은 언제나 떠난다

[시와 함께 살다 35] 5년만에 고국을 다녀오고 나서

등록 2006.01.31 14:18수정 2006.01.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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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인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가볍게 떠올랐던 하늘이
천천히 내려와 땅이 되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93 마종기 시집 <이슬의 눈>에서)


a 팔당대교가 보이는 한강변 산책로에서

팔당대교가 보이는 한강변 산책로에서 ⓒ 정철용

1. 폭설과 진눈깨비

수십 년만의 폭설이라고 했다. 오클랜드발 인천행 대한항공의 기내 스크린에서 9시 뉴스의 앵커는 말하고 있었다. 이어서 비닐 하우스가 무너져 내려 울상이 된 농부들의 한숨과 고속도로에 고립되어 차를 버려야 했던 운전자들의 난감함을 기자는 보도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내 귀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쏟아지는 그 눈송이들과 온통 하얗게 눈에 덮인 벌판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아, 얼마나 그리워했던 풍경인가!

뉴질랜드 시간으로 막 자정을 넘겨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로 넘어서는 그 시각, 이미 눈이 그친 지 오래되었건만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는 아직도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그 폭설을 뚫고 나는, 뉴질랜드 이민 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인 꿈속에서도 눈이 내렸던가. 두 번째 기내식이 제공되는 부산스러움에 눈을 떴을 때는 비행기는 한반도 상공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손목시계의 시침을 4시간 뒤로 돌려 한국 시간으로 맞추었다.

저 아래 컴컴한 어둠 속 어디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매해 참아오던 나의 그리움이 내가 한국을 방문하는 때에 맞추어 저렇게 주체하지 못하고 폭설로 내려 쌓인 것인가.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도록, 정작 내가 한국에 머문 4주 동안에는 눈 소식이 딱 그치고 말았다.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정신없이 만나고 다니면서 내 오랜 그리움이 해갈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눈이 내릴 이유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번 눈이 내리긴 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바랐던 소담스런 함박눈이 아니라 질척질척한 진눈깨비였다. 그나마 그것도 늦은 저녁에 조금 내리다가 말았다. 아내와 함께 함박눈을 맞으며 명동을, 그리고 모교의 교정을 거닐어 보리라는 내 소망은 끝내 이룰 수 없었다.

a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과 용연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과 용연 ⓒ 정철용

하지만 그래도 아직 녹지 않고 남아 있는 쌓인 눈들을 여러 번 만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처갓집 근처의 한강변 산책로에서, 수원 화성의 석벽 아래서, 용인 민속촌의 얼음물 흐르는 계곡에서, 남한강을 따라 분원 마을과 용문사로 이어지는 도로변에서 아직도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눈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5년 전 아무 말 없이 떠나보냈던 손님을. 여름 나라에서 12시간을 날아와 겨울 나라로 건너온 5년만의 방문객을.

2. 방문객과 귀국

그렇다. 나는 방문객이었다. 입국 신고서의 '여행 목적'을 기재하는 난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귀국'이라고 적어 넣는 대신에 '가족 방문'이라고 적어야 했다. 5년 동안의 연락 두절에도 불구하고 마치 엊그제 만났다가 다시 보는 것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 고등학교ㆍ대학교 동창들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에게도 나는 단지 방문객이었다.

"그래, 아주 들어온 거냐?"
"아니, 잠깐 다니러 온 거야."

'귀국'이 아니라 '방문'이라는 나의 대답에 그들은 조금 쓸쓸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 방문객은 언제나 떠나는 법이니까, 쓸쓸하기도 하겠지. 어떤 놈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했고, 민망할 정도로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놈도 더러 있었고, 또 몇몇은 내가 건네준 술잔을 고이 모셔두기만 해야 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기도 한 친구들의 쓸쓸함 앞에서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미안함 때문에 내가 그 동안 연락을 안하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방문객으로 왔으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다 만나지도 못한 채 빠듯하게 4주간의 일정을 보내고 나는 뉴질랜드로 귀국해야만 했다. 한국을 떠나는 날, 나는 출국 신고서의 '여행 목적'에 '귀국'이라고 적어 넣었다. 내 조국을 떠나는 그 순간에 '귀국'이라고 적어야 하는 이 아이러니라니!

입국 시에는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국외자의 처지가 출국 신고서를 작성하면서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그렇지만 쓸쓸하지는 않았다. 내 가슴에는 모처럼 만난 그리운 고국산천에 쌓인 흰 눈의 풍경이 담겨져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 본 그리운 이들의 정겨운 미소가 담겨져 있었으니까.

a 용인 민속촌의 눈 쌓인 계곡

용인 민속촌의 눈 쌓인 계곡 ⓒ 정철용

그렇게 떠나온 방문객이 거기, 그리운 이들의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을 남겨두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그들의 가슴에 남겨두고 온 것이 부디 평화였으면 좋겠다. 빈 가슴에 내가 담아온 고국의 흰 눈이 쌓인 풍경처럼, 쓸쓸해지는 날 따스한 손바닥 안에서 녹으면서 가슴을 적셔주는 그런 평화였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지난 해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19일까지 4주간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도, 반갑게 나를 맞이해준 친구들과 전 직장동료들과 또 여러 지인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해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19일까지 4주간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도, 반갑게 나를 맞이해준 친구들과 전 직장동료들과 또 여러 지인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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