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바다를 담아 왔습니다

주문진항엔 삶의 힘이 넘쳐

등록 2006.01.31 15:30수정 2006.01.31 15:3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소 동해에 가고 싶었다. 동해에 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꼭 마음먹은 대로만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쉽지 않았다. 그게 다 얽히고 설킨 세상이기 때문이리라.


오랜만에 달려보는 고속도로. 100km이상으로 달리며 속도감을 느낀다. 어느 산천이나 고향 풍경과 비슷하지만 맞는 바람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a 아내도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달리는 것을 즐긴다

아내도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달리는 것을 즐긴다 ⓒ 김영래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 보조석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음악을 음미하며 그렇게 동해바다로 향했다.

겨울 휴일의 오후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한 하늘만큼이나 푸르고 높았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었다. 맛이 독특하고 고소했다. 알밥이란 새로운 메뉴가 등장해 약간 갈등을 했지만 이내 우동 한 그릇, 라면, 알밥 2개를 시켜 먹었다.

터널이 자주 등장하고 심상찮은 대관령이 나타났다. 기왕에 상술을 발휘하려면 예전처럼 그 높은 곳에 잠시 멈출 수 있는 곳을 좀 만들어 놨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높새바람이 만들어 지고 구름도 쉬어 넘는 그곳에서 세상을 좀 내려다 볼 수 있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바다 위의 하늘은 초록이 반사되어 더 파랬고, 파란 빛 한켠으로 비켜선 구름들은 뭉게뭉게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햇빛을 받아 순백으로 탈색되어 눈이 부셨다. 바다의 출렁임과 하늘의 휑함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a 주문진 시장안은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주문진 시장안은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 김영래

이내 도착한 주문진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바닷가 높은 곳에 건물이 들어섰는데 멋진 전망대도 아니고 카페나 호텔도 아닌 주차장이었다. 공중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항구를 내려다보니 전망도 좋았고 편리했다. 이곳을 찾은 것은 서너 번 정도 됐지만 맘 편하게 주차를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주차장은 여행객들을 배려한 것에 틀림없다.

이곳에 화려한 호텔이나 현대식 상가를 세웠다면 거대자본의 배만 더 불리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주문진 시장은 청년처럼 활기찼다. 사람을 끄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질척이는 시장을 두 퀴나 돌았다. 아이들은 처음보거나 TV에서 봄직한 낯선 물고기들이 나타나면 신기해하며 보곤 했다. 곰치, 도치, 청어, 대구 등등.


아주머니들은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꽁꽁 언 손을 녹이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시장 바닥은 질척였고 아주머니들의 앞치마는 미끌미끌 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곳에 있는 시장엔 이런 생기가 없는데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 같았고, 뭔가 애환을 가슴에 넣고 묵묵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파제로 가려니 너무 멀고 바람도 쌀쌀해 차로 돌아가려고 막 시장을 벗어나는데 빨간 게를 팔고있는 할머니가 우리 가족을 잡아끌었다.

“얼만데요?”
“11마리 만원.”

다른 어느 곳을 더 들리고 맘 내키면 하루 묵을 맘을 갖고 있던 터라 아무것도 사지 않고 빠져나가려던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건 할머니가 극구 따라와서는 아내의 옷자락을 잡아 끌면서 “내가 떨이로 13마리를 줄게”하시는 것이었다.

한두 마리에 욕심이 난 것도 있지만 노인이 추운 날씨에 시장에서 척척한 앞치마를 두르고 장사를 하시는 모습이 더 안쓰러워 맘 약한 아내가 사기로 맘을 정한 모양이었다. 난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a 시장 지붕밑에는 발디딜틈조차 없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시장 지붕밑에는 발디딜틈조차 없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 김영래

2층 주차장에 올라서니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시장의 지붕만 보였다. 각자 자신들만의 애달픈 사연들 한 조각씩 꺼내 하늘을 덮고 있는 것처럼 작은 조각들이 엉성하게 얽혀있었다.

저 밑에 사는 사람들의 신나는 한때를 봐서 그런지 힘이 났다. 주문진항을 빠져나와 뒤로 돌아가니 해안 초소들이 나타났고, 조그만 바닷가 공원이 보여 그곳에 들러 우리는 동해에 온 기념으로 회가 아닌 조개구이를 먹었다. 바닷가 공원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옆에 있는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보온병에 싸간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뉴스에서 본 것처럼 모래사장이 반쯤 잘려나갔고, 계속해서 파도는 모래를 삼키려는 듯 달려들었다.

나와 아들만 바닷바람을 맞으러 차에서 내려 파도 가까이 갔다.

“바다 참 넓지. 저 안엔 말이야. 많은 생각들이 있어서 저렇게 출렁거리는 거야. 너도 저 바다를 가슴에 넣고 가.”

그러자 녀석이 대뜸 바다를 움켜쥐고 가슴으로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장난이었지만 바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라는 맘으로 나도 바다를 가슴으로 끌어당겨 넣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웃었다. 아마 차에 있던 여자들은 몰랐을 거다. 우리가 바다를 가져온 사실을.

a 생각이 출렁이는 바다를 가슴에 넣어 오다

생각이 출렁이는 바다를 가슴에 넣어 오다 ⓒ 김영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둑어둑했고, 서산에 걸린 붉은 해가 구름 한켠에 숨어서 가끔 얼굴을 내밀었다. 졸음을 참느라 트롯을 틀고 소리를 내어 따라 불렀는데 매일 먼지 잠이 들던 작은 녀석이 바다를 가슴에 넣어서 그런지 안 자고 나의 말동무를 해주었다.

여행은 하루를 길게 만들어 주고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힘들고 지쳤을 때 에너지를 얻으려면 동해의 어시장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것이 제일인 듯싶다.

a 꼬리를 무는 불빛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다

꼬리를 무는 불빛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다 ⓒ 김영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5. 5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