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여자 교황이 있었다고?

[서평] <중세의 못 말리는 여자들>을 읽고

등록 2006.01.31 20:08수정 2006.02.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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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못 말리는 여자들> 표지
<중세의 못 말리는 여자들> 표지꼬마이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카는 역사란 '역사가들에 의한 역사'라고 하였다. 역사는 객관적인 사료를 근거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료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사실은 달라진다. 이런 사료들은 역사가의 일정한 목적에 따라 선택되어지는 것이다. 일정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려는 목적 역시 역사가에 의해 정해진다. 따라서 역사는 객관적 사료를 토대로 이루어진 '역사가들에 의한 역사'라는 주관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 사회에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여성들의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왜곡되고 숨겨진 여성들의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역사책을 통해 남성중심의 역사 답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략적 역사를 배우게 되는 청소년들용 역사책에서는 더더욱 여성의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다.


<못 말리는 여자들>시리즈는 청소년들을 위해 여성의 역사를 재해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고대에 이어 암흑기라고 하는 중세에도 여성들 역사는 잠들지 않고 여기저기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십자군 원정을 떠나고, 사업을 하느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여자들은 넓은 장원(토지 소유의 한 형태)과 작은 농장을 운영했어. 세금을 거두고 법적인 문제들을 처리 했지. 때로는 적의 손에서 집과 마을과 성을 방어했단다'

그런 여인들 중 하나인 오드는 남편을 잃고 무시무시한 바이킹 여족장이 되었다. 종족을 이끌고 새로운 땅 아이슬란드에 정착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흐트러짐 없이 꿋꿋이 이겨냈다. 선덕여왕, 마틸다, 에레오노르, 코켄는 왕가의 딸로 태어나 왕이 되거나 왕과 같은 권을 가졌다. 특히, 엘레오노르는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비였으며, 직접 십자군전쟁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1300년 초반에 시작되어 중세의 유럽 전 지역으로 퍼졌던 마녀사냥은 당시 억압받던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을 해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었는데 그중에 마오도 두 번이나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두 나라에 해당할 만큼의 큰 영토를 다스리는 귀족이었다. 마오는 중세라는 어두운 시대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도 자신의 땅을 훌륭하게 다스렸던 멋진 여자였다.

그 누구보다도 중세 여인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것은 다미아 알 카히나다. 북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을 통치했던 족장으로, 이집트의 왕자 하산이 이끄는 이슬람 군대와 맞서 자신의 땅을 지켜 냈던 여자다. 서로 다른 종교와 혈통을 지닌 사람들을 끌어안을 줄 아는 통큰 여자였다.


나라와 대륙을 뒤흔드는 권력을 가졌던 여인들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흥미롭다. 측천무후를 폄하하여 평가는 것에 다음과 같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황제든지 일단 권력을 가지고 나면 많은 이성과 정을 통하는 게 보통이야. 권력을 가졌었던 옛날의 왕이나 황제들은 뻔뻔하게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어. 하지만 여왕들의 행실은 늘 사람들의 비난을 듣기 쉬웠단다.'


이렇게 놓고 보니 사실 그렇다. 남자들은 처첩을 줄줄이 거느리면서도 여자들에겐 칠거제약이니 마녀사냥이니 하며 억압해 오지 않았던가? 뒤주 속에 사도세자를 가둬서 죽인 영조보나 측천무후가 더 비난받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여성이라는 원죄 때문일 것이다.

여성에게 있어 가장 큰 족쇄는 모성애라 할 수 있다. 오랜 역사 동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되어 모성애를 강조해 왔다. 반면 남성들은 가족사랑을 사사로운 정으로 치부해야만 했고 대장부의 면모를 갖추려면 가족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어야 했다. 모성애는 여성에겐 미화된 사회 도덕적 규제였고, 남성들에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왔다.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보이지 않는 제약 요소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망론하고 여성의 활동을 더욱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종교계이다. 만약 역사 속에 여자 교황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남성 종교지도자는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장을 하고 수도원 생활을 하던 '조안'이라는 교황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

또, 귀족의 딸로 태어나 청빈한 성직자로 살았던 클라라같은 성녀도 있었다. 힐레가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견줄만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다방면에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성직자로서 활발히 활동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850가지가 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 내기도 했다. 또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를 도운 아내 하디자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 분야에는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가 단연 돋보인다. 시부키의 <겐지 이야기>는 세계 최초의 소설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면 구성이 치밀하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유명하다. 이청조는 중국 송나라 여인으로 스스로 '이안거사(편안하게 지내는 사람)'로 칭하며 남편과 더불어 학문과 시를 사랑했고 금석문을 연구하여 <금석록>과 많은 시를 남겼다.

동로마 제국의 안나 콤네는 <알렉시아스>을 통해 십자군 전쟁을 기록에 남기고 부상병을 돌보았다. 그녀는 아버지 알렉시우스와 황실의 역사를 기록한 책 <알렉시아스>를 완상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당시 십자군의 진모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살레르노는 당시로써는 보기 드물게 몇몇의 여의사들이 있었다. 트로툴라는 남자의사들에게 치료받는 것을 거부하여,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의사가 되기로 했다. 그녀가 쓴 <여자의 질병과 치료><약물의 조제>라는 책은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간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트로툴라와 비견할 우리나라 여성으로 박에스터가 있다. 트로툴라는 1080년 경에 활동한 인물이고 박에스터는 1876년에 태어났다. 두 여인을 보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외국에 비해 얼마나 더 오랜 동안 남성의 권위 앞에 고통 받아 왔는지 알 수 있다.

<못 말리는 여자들>시리즈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원대한 꿈을 갖고 대륙과 나라를 호령하며,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성인의 인품을 지닌 여인들이 있었으나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부분 왜곡되어 일반인에게 알려지거나, 남자들의 이름에 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한 그녀들의 삶을 읽다 보면 딱딱하게만 보이는 세계사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덧붙이는 글 | 중세의 못 말리는 여자들/ 비키 레온 지음 /꼬마이실

리더스 가이드와 알라딘에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중세의 못 말리는 여자들/ 비키 레온 지음 /꼬마이실

리더스 가이드와 알라딘에 실었습니다.

중세의 못 말리는 여자들 -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비키 레온 지음, 최재호 그림, 박종윤 옮김,
꼬마이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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