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고향을 찾아 추억을 더듬었습니다

칠순 노모를 고향에 두고 떠나오기 쉽지 않았습니다

등록 2006.01.31 18:39수정 2006.01.3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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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하는 사람, 마음속에 큰 기대를 숨기면서 '그저 아무 탈 없이 처자식 데리고 잘 살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 죄스러움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지만 가장 편안하고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받아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 가슴엔 온통 생채기로 성한 곳이 없지만 행여 걱정할까봐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어머니!

이번 설은 연휴가 짧아 잠시 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27일 반휴를 내고 오후 4시쯤 귀성길에 올랐습니다. 수원에서 전라남도 광주를 지나 고향인 화순까지는 320㎞정도 거리, 막히지 않고 정상적인 속도로 간다면 4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지만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정체가 시작되는 걸 보니 언제 도착할지 모를 일입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휴대 전화를 꺼내들었습니다.
"어디다 전화하려고?"
"어머님한테 출발한다고."
"전화하지 마, 괜히 걱정하시니까 광주쯤 도착할 때 전화 드려."

그렇습니다. 미리 전화 드리면 도착하는 순간까지 마음을 못 놓으시고 '혹시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밤을 새워 기다리실 것이 뻔하기 때문에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드리는 셈이니 도착할 때 쯤 전화를 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습니다.

혹시 졸까봐 옆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아내 때문에 힘들다는 말도 못 꺼내면서 10시간 가까이 지난 다음날 새벽 2시경에 고향집엘 도착했습니다. 역시나 칠순의 노모께서는 주무시지 않고 밥을 새로 지어놓고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a 칠순의 노모가 홀로 지키고 있는 고향집

칠순의 노모가 홀로 지키고 있는 고향집 ⓒ 강석봉

a 마을회관 앞, 도시의 자식들이 몰고온 차량

마을회관 앞, 도시의 자식들이 몰고온 차량 ⓒ 강석봉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 탓에 오전 10시쯤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놈을 데리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워낙 시골이어서인지 떠나온 지 25년이 흘렀는데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더욱 정겨운 느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래서 어깨 한 번 쭉 펴지 못하고 사는 순박한 농촌 사람들이 겪는 아픔이 느껴지더군요.

추억을 더듬어 가는 길이 정겹지만은 않은 건 평균연령이 70세에 달하는 농촌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 쌀이 있는데 밥 해먹으면 되지 굶어?"하고 되묻는 아들놈의 질문과 왜 그렇게 닮아 있던 지요.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건 정부나 정치하는 분이나 도시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14살짜리 아들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억 속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두 시간 여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아내는 어머니께서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주어서인지 무엄하게도 어머니의 귀한 아들이 술 먹고 실수한 일,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지 않고 쉬는 날 하루 종일 소파에 누어서 TV만 보고 잠만 자는 일 등 시시콜콜한 것부터 일러바치기 바빴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제가 "어디 나 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장모님이 당신 고향에선 시집 잘 갔다고 다들 그런다던데"라고 한마디 하자 모두가 웃고 말았습니다.


a 이농, 사망 등으로 이용객이 줄어 문을 닫아버린 가게

이농, 사망 등으로 이용객이 줄어 문을 닫아버린 가게 ⓒ 강석봉

그동안 동네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농현상으로 학생이 점점 줄어들어 한때 한 학년이 150여명에 이르던 초등학교가 분교로 바뀌더니 몇 년 전에 폐교되어 모교를 잃어버렸고, 40여년의 추억이 담겨져 있는 전방(후에 슈퍼)이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어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또한, 누구네 아들은 사업을 해서 돈을 얼마를 벌었고, 누구네 아들은 이혼해서 혼자 산다는 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골분들은 모였다하면 자식 이야기니 어머니가 동네에서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하려면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차례를 드리고 이른 아침 성묘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4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무덤 앞에서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생전에 밖으로만 떠돌아 어머니를 힘들게 했고 아버지가 가정에 소홀해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술만 드시면 형과 저를 불러놓고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형제간에 의좋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년 동안을 간암으로 그 견디기 힘든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힘들다 말도 못하고, 자식들이 보고 싶다고 해 내려간 다음 날 6남매의 자식들을 다 보고서야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지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제가 상여가 동네 한바퀴를 돌아 산에 다다를 즈음 저도 모르게 통곡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습니다.

쌀 한포(40㎏), 호박 세덩이, 도라지, 고사리, 김치, 조기, 돼지고기, 떡 등 차 트렁크가 꽉 들어찰 정도로 바리바리 챙겨주는 어머님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칠순의 노모를 혼자 두고 떠나오는 쉽지 않은 길에 아주 조금이지만 겨울비가 내리더군요. 마치 제 마음을 아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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