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형' 보험, 의료이용 양극화의 서곡 ③

공공보험 보장성 강화의 최대 걸림돌

등록 2006.02.02 18:01수정 2006.02.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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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료보험 가장 활성화된 미국의 폐해

메이저 수구언론, 거대자본, 경제부처가 총동원되어 전방위적으로 강력하게 추진중인 의료산업화. 그 선두열매가 의료계에서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이은 제주도의 외국인 영리법인병원 설립이고, 민간의료보험에서는 실손형 상품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반면교사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 미국은 대표적 사례다.

미국은 민간의료보험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고,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장제도가 없는 나라이다. 2003년 국민 전체의료비가 무려 1700조원, GDP 대비 15%(OECD 국가 평균은 8.6%)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1인당 평균의료비 역시 OECD 평균 $2307보다 두 배 이상인 $563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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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 Health Data

그러나 미국은 영아사망률과 보건의료체계 성취도 등 주요 지표를 통해 나타나는 건강수준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 건강지표인 영아사망률이 2001년 출생아 1천 명당 7.0으로 1999년 우리나라의 영아사망률인 6.2보다 떨어지고, 2003년 전 국민의 15.6%인 4500만 명은 어떤 형태의 의료보장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

실손형 가입자들, 공공의료 보장성강화의 최대 저항세력

미국의 공적 의료보장에는 메디케어(Medicare :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건강보험제도)와 메디케이드(Medicade : 빈곤층을 위한 의료급여제도)가 있으며, 2003년 현재 전체 인구의 13.7%인 4100만 명, 13.3%인 4천만 명이 각각 가입해 있다. 나머지는 민간의료보험 가입자이거나 미가입자이다.

실손형 등 민간의료보험의 폐해는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의 보완보다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 실례가 미국의 노인(장애인) 건강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의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인 메디갭(Medigap)이다.

미국 정부는 1988년 메디케어의 보장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법안인 MCCA(Medicare Catastrophic Coverage Act)를 입법했으나 18개월 만에 좌초했다. 이미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인 메디갭에 가입하여 본인부담금을 해결하고 있던 중산층 이상이 메디케어의 보험료 인상을 가져올 MCCA 시행을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메디갭 사태를 그토록 따라가고 싶은가

미국의 메디갭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실손형 보험의 가입확대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반대하는 집단이 양산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민간의료보험은 본인부담금에 대한 실손형이 아니라, 약정된 정액을 지급하는 정액형이었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대한 반발을 강하게 촉발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인부담금에 대한 실손형이 들어오게 되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상품 구매자를 중심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반대하는 경제적 동기가 형성되면서 미국 MCCA 사태의 재연을 초래하는 것이다(충북대 의대 이진석 교수).

이 경우 매년 3∼6%의 보험료를 인상하여 2008년까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70% 이상까지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보장성강화 로드맵은 재원조달 실패로 좌초될 수도 있다. 현재와 같이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하에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허용한다면 사회양극화에 이어 건강보험의 축소와 의료이용의 양극화로 직결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건강보험의 보장성 80% 이상이 된 이후에 민간의료보험도입을 논하자는 가장 큰 이유이다.

실손형은 대통령의 핵심과제인 사회양극화 해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품'이다. 하지만 '의료서비스산업화' 구호와는 구색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화와 일자리 논리로 우위를 확보한 자본은 전진기지를 구축 중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공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보장범위, 보험료, 지급율 등에서 효율성 차이가 뚜렷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적이다. 그래서 서구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특실 이용 등 공공보험 보장성 영역 밖의 부분에 국한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100%영리의 주식회사가 아니라 공제조합, 상호회사 등 비영리가 주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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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지급 및 납부 보험료 그래프(2004) ⓒ 송상호

실손형에 대비 발빠르게 움직이는 의료계

작년에 대한병원협회는 민간의료보험 제도화에 대응해 병원을 대상으로 한 '민간의료보험협의체(KPPO)'를 구성했다. KPPO는 실손형과 같은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대비해 미리 병원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보험사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등 양자간 상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병협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단체다.

전국 1200여 회원병원을 대상으로 가입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 한양대병원을 비롯 영남대병원, 한림대의료원 등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등을 포함한 전국 140여 개 병원에서 가입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병협은 "대부분의 병원들이 민간의료보험의 제도화를 대세로 인식하고 있으며 병원계 의사를 대변하는 협의체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다"며 민간의보 시장에 대응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을 수립하고 보험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보험관련 업무를 표준화 및 체계화시켜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2005.12.27. 병협 보도자료).

실손형 보험, 사회양극화 해소를 공염불로

OECD는 회원국의 민간의료보험 실태 조사·분석과 평가를 하고 있는데 민간의료보험은 공공의료비와 국민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민간의료보험이 공공재정의 부담완화를 위해 OECD가 제시한 조치들 중 '(실손형 보험과 같이)본인부담 부분마저도 민간의료보험이 보장해 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를 통한 과다한 의료이용을 막을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프랑스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이 본인부담금을 보장하자 국민전체 의료비가 크게 증가하여 주변국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총급여율이 70%를 넘고 30대 중증질환 뿐만 아니라, 수술, 분만, 한 달 이상 입원의 경우 공공보험에서 100%를 보장해 주고 있음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급여율 60%선인 우리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은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라고 시민사회단체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실손형은 건강보험이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보장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초래되는 부의 정도에 따른 의료서비스, 의료비지출의 급증, 그리고 의료보장이라는 사회안전망의 균열. 이는 사회양극화 해소 구호가 공염불임을 보여줄 뿐이며,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 공공의료 확대에 심혈을 기울여온 이들의 일치된 우려이다.

덧붙이는 글 | 송상호 기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송상호 기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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