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서 찍은 지리산 풍경조태용
지리산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릅니다. 봄에는 연두색이었다가 그 색이 짙어지면서 푸른색으로 변하면 여름이고, 붉어지면 가을이요, 붉은빛이 사라지면 겨울입니다. 봄 여름 가을이 소리 없이 천천히 변한다면 차라리 겨울은 요란합니다. 평소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얌전한 녹색이었다가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은 하얀색으로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눈이 온 다음 맑은 날은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그 색이 한층 더해 눈이 부십니다.
노고단에 멈춘 시선을 아래로 낮추어 보니 화엄사가 보입니다. 화엄사는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난생 처음 낯선 사람과 잠을 잔 곳이기 때문입니다.
때는 첫 지리산 종주를 시도하던 대학교 1학년 여름이었습니다. 지리산 종주 중 화엄사를 찾았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등산은 다음 날로 미루고 화엄사 근처에 텐트를 쳤습니다. 지금은 계곡에서 야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당시만 해도 계곡 좋은 자리는 모두 야영 가능 지역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배낭 정리를 하는데 밖에서 누군가 부릅니다.
"안녕하세요."
"네"
"제가 텐트가 없어서 그러는데 오늘 하루 함께 잘 수 있을까요?"
불쑥 말을 건넨 사람은 3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습니다. 텐트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함께 잠을 자자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럽더군요. 좁은 텐트 안에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과 잠을 잔다는 것은 낯선 그 사람만큼이나 낯선 일입니다.
남자끼리니 잘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잔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그때 스무 살이었고 누구를 의심할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밖에서 노숙을 하라고 할 수는 없어서 결국 동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지리산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