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재미있는 삼국유사

고운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록 2006.02.10 17:18수정 2006.02.10 17:18
0
원고료로 응원
a 고운기-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현암사

우리 민족문화의 보고(寶庫)인 <삼국유사>가 시인이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고운기에 의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재미있는 책으로 꾸며져 나왔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 옛날 이야기책으로도 많이 읽었던 단군신화, 박혁거세, 고주몽 신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연오랑 세오녀 등이 모두 <삼국유사>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우리 민족의 삶의 원형, 그 뿌리가 이<삼국유사>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동안 <삼국유사>가 번역되어 출판된 책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국문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그 내용이 딱딱하고 지루했다. 삼국유사가 갖는 소중함은 알고 있지만 막상 책을 들고 읽으려면 책장이 잘 넘겨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13세기 말, 고려 후기 일연 스님이 쓴<三國遺事>는 우리 민족의 건국에서부터 삼국시기까지 여러 가지 남겨 전해지는 이야기 혹은 일(遺事)을 기록한 것인데, 한문으로 쓰여 있다. 지금껏 우리가 쉽게 접해온 <삼국유사>는 그걸 단순히 번역만 해놓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민족문화의 보고(寶庫)라 할지라도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의 역사책을 안내자 없이 재미있게 읽어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점을 간파한 도서출판 현암사에서 '우리가 정말 알야 할' 시리즈의 하나로 삼국유사를 기획 출판하게 된 것이다. 시인 고운기를 안내자로 내세워서.

몇 해 전 나는 그의 세 번째 시집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창비, 2001)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시인이<삼국유사>를 펴냈을까 싶었다. 알고 보니 '삼국유사'는 그가 대학원 전공이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도 시인이었다. 전해지는 설화나 행적을 기록하고 그 내용에서 비롯된 스님의 마음을 노래로 찬(讚)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신라에 불교를 공인토록 한 이차돈의 죽음을 다룬 곳('흥법'편'원종은 불교를 일으키고 염촉은 몸을 바치다'조)에 있는 찬을 소개한다.

徇義輕生已足驚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天花白乳更多情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俄然一鉤身亡後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院院鍾聲動帝京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 171쪽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팔백 년 전의 시인이 쓴 시를 현역 시인이 번역하고 해설을 갖다 붙이니 그 내용이 더욱 선명해진다. 고운기가 펴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특별 보급판>은 그가 지난 2002년 봄에 출간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1, 2>의 보급판이다.


2권에 걸쳐 있던 내용 중 추천하고 싶은 장(章)만 따로 골라 편집한 것으로, 일반인과 중고생, 대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래 삼국유사에 실린 본문 중 꼭 필요한 내용을 번역하여 싣고, 거기에 저자가 자세히 설명을 해나가는 식의 서술법은 일반 독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이다. 나는 이 책을 마치 재미있는 역사 소설을 읽듯이 책장을 넘겨갔다.

이 책의 구성은 책의 앞머리에 저자와 함께 현장에서 간 사진작가 양진이 직접 카메라로 찍은 컬러 사진 15면, 저자의 '머리말', 삼국유사의 탄생 배경과 저자 일연, 삼국유사의 구성, 삼국유사가 전해져 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가 놓여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선 선행 지식인 셈이다. 그리고 본문은 '이 땅의 첫 나라' '고구려와 북방계''신라와 남방계'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밤에 찾아오는 손님'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첫 성전환증 환자' '왕이 되는 자' '견훤, 비운의 영웅' '순교의 흰 꽃 이차돈'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낙산사의 힘'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밀교의 한 자락'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숨어 사는 이의 멋' 등 19개의 작은 항목으로 나뉘어져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이 원래 삼국유사 어느 조에 있는 것인가를 밝혀놓은'이 책에 소개된 삼국유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다른 역사책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문헌들까지 비교해가면서 설명하고 거기에다 시인의 상상력이 가미된 고운기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특별 보급판>은 우리에게 <삼국유사>의 입체적 읽기의 기쁨을 전해준다.

나는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지난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우물'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서 우리 민족의 원형을 이해하고,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갖게 되는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지음, 양진 사진,
현암사, 2002

이 책의 다른 기사

'삼국유사'의 주인공은 '민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