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4월 11일 두취케의 암살 시도 후 베를린에서 벌어진 격렬한 시위
68운동의 열기가 가라앉고 나서도 슈프링어 그룹과 그 신문들에 대한 분노는 계속되었다. 1972년에는 적군파가 함부르크의 슈프링어 건물에 폭탄을 던졌는가 하면, 독일의 유명한 소설가인 하인리히 뵐은 1974년에 슈프링어 신문들을 신랄히 비판하는 소설을 내놓았다.
1980년대 들어서는 하버마스와 귄터 그라스 등이 포함된 독일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슈프링어 신문들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조직했고, 비교적 최근인 2004년에는 사민당 정부를 온통 부정적으로 그린다는 이유로 슈뢰더 총리가 <빌트>와의 인터뷰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슈프링어 그룹은 언론독점과 여론조작 문제를 둘러싼 분쟁의 주역을 도맡아 왔고, 68운동 당시에는 운동의 주요 목표로 설정되어 청년 학생들과 공권력의 극심한 물리적인 충돌을 불러일으킨 역사를 안고 있다.
연방기관, 방송사 '통째 인수' 불허
물론 현재의 분위기는 사회 모순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과 저항의 불길이 치솟던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독일은 법적으로 언론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감시·규제하는 제도를 두고 있고, 슈프링어 그룹이 최대의 민영 TV 방송 그룹을 인수 합병할 경우 40%가 넘는 언론 영향력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우려는 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미디어 집중과 독점을 감시하는 연방기관은 이런 사정에 따른 비판적인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고, 지난달 언론독점의 가능성을 들어 슈프링어 그룹이 '프로지벤·자트아인스' 방송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을 불허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난항에 부딪친 슈프링어 그룹은 연방기관의 제안대로 알짜배기 방송인 '프로지벤'을 빼는 인수 방안을 꺼냈다가 다시 철회하는 등 갈팡질팡하다가 이 달 초 결국 인수 포기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방송사 인수로 감수해야할 경제적·법적 위험부담과 정부기관의 최종 승인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이 슈프링어 그룹의 공식 명분이었지만, '제국'이 백기를 든 데는 언론독점에 반기를 든 '비판적 여론'이 한 몫 했음에 틀림없다. 언제나 그렇듯 비판적 여론의 존재는 언론 자유의 부재를 막아내는 일차적인 안전판인 것이다.
그런데 슈프링어의 이러한 포기 선언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사민당과 녹색당 정치인들이 대체로 합당한 일이라고 평가한 반면, 보수적인 기민당이나 기사당 일각에서는 슈프링어의 방송사 인수 합병 실패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주 기사당 당수인 슈토이버는 해당 방송사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며 이번 기회에 독일의 언론집중 규제법안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보수 정치인들의 이런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다. 슈프링어의 인수 대상이던 '프로지벤·자트아인스' 방송 그룹은 이미 미국인 사업가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주장은 슈프링어의 방송사 합병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철저히 눈을 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일자 <프랑크푸르트 룬터샤우>가 사설에서 지적한 다음 대목은 곰곰이 되새겨볼 만하다.
"슈프링어가 프로지벤·자트아인스 방송 그룹의 합병에 성공했다면, 전 독일 인구의 절반이 이 거대 기업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을 것이다. … 이런 미디어 권력이 오용될 수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물론 그 오용은 가능성으로 존재하지만, 이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것이다. … 미디어의 힘은 직접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향한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소망, 삶에 대한 가치관, 그리하여 무엇이 옳고 그런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 때문에 미디어 권력은 가능한 한 다양하게 분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권력이건 정치권력이건 권력 자체의 속성은 사실 위험한 것이다. 형식만 다를 뿐 모든 권력은 '억압'의 본질을 담고 있고, 모든 억압은 '저항'을 불러일으킨다고 역사는 가르쳐왔다.
"거대한 언론권력에 대한 저항이 성공을 거두었다"며 2일자 <타게스차이퉁>은 슈프링어의 TV 방송 인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자축했다. 결국 슈프링어의 꿈은 이렇게 날개를 접었고, 독일은 신문과 방송을 한 손에 움켜쥔 가공할 '미디어 제국'의 등장을 피해가게 되었다.
하지만 슈프링어가 연방기관의 제안대로 중요한 방송 채널 하나를 빼고 TV 방송 그룹을 인수했다면 어땠을까? 그럴 경우에도 과연 언론독점의 가능성은 저지되고 언론자유의 보루인 다양성은 지켜졌을까? 소위 언론 집중과 독점을 '감시·규제'하는 연방기관 스스로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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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공저), 역서로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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