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저상버스 도입 확대해야

유모차와 휠체어와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 위해

등록 2006.02.13 11:53수정 2006.02.1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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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 서울지하철에서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중증장애인들이 제 몸에 쇠사슬을 엮어 시위하던 일이 기억에 또렷하다. 그 일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장애인들이 활보하는 거리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때문이다.

그 이후로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하여 저상버스 도입, 버스타기운동, 법제정운동 등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드문드문 지하철 리프트를 타던 장애인들의 사고소식이 들렸고, 내가 사는 대구시내에서도 이른바 '저상버스'를 로또복권 당첨될 확률정도로 타볼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이동권 문제에 약간의 관심만 가졌던 내가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다. 관광지로 파리와 로마를 돌아보고, 유학 중인 후배가 있는 독일 프라이부룩에 열흘 남짓 머물렀다. 그 곳에서 나는 교통이 단순히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능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체제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나라 거리에서, 그리고 버스와 전철 안에서 프라이부룩에서처럼 그토록 많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버스와 전철 안에서 유모차와 휠체어를 보는 일 자체가 희귀하지만, 그 곳에서는 많을 때는 한 전철 내에 동시에 서너 대의 유모차가 올라타고 내리고 하였다.

유모차를 끌고도 차를 타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유모차를 끌고도 차를 타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이경숙
프라이부룩 거리와 버스, 전철에 유모차와 휠체어가 많은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교통수단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단체가 목숨을 걸고 '저상버스'도입을 요구하였지만, 프라이부룩의 버스와 전철은 모두 '저상'이었다. 여행지였던 파리와 로마에서도 버스는 '저상'이었다. 나는 '저상버스'가 특별한 교통수단인 양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교통수단이란 당연히 '저상'이고, 우리나라의 차들이 몇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고상버스'일 뿐이었다.

아이,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나 남자, 장애인, 짐이 많은 이, 걷기가 어려운 이, 노인... 그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탈 수 있는 교통수단! 그들을 '배려' 대상으로 삼아 그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을 호소하거나 그들을 보호하는 특별한 장치를 달아 장치를 이용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조급한 시선에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인도와 차 바닥의 높이를 같게 한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누구나 수평으로, 평평한 길에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과 다르지 않도록 설계된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길을 건너거나 차를 탈 때 아직 우리나라는 수직이동이 많다. 버스를 타고 내리려면 몇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너려면 육교나 지하도로 건장한 이도 힘들만큼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한다.


인도와 차바닥의 높이가 같다
인도와 차바닥의 높이가 같다이경숙
우리나라도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있는 줄 안다. 매년 아주 조금씩 도입되는 저상버스마저도 마치 장애인들을 위한 특별배려인 양, 또는 세금낭비인 양 행세하는 관청이나 사람들의 인식이 사라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훨씬 더 빨리 수평이동이 가능한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도시에 아직 3~4대도 보기 어려운 저상버스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횡단보도를 늘이고 차바닥을 인도와 같게 하는 일은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사람이 최소한 자신의 삶을 보장받는 길이다.


버스의 외형
버스의 외형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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