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 한 그릇

미역국엔 새벽녘의 정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등록 2006.02.19 15:26수정 2006.02.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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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 그릇입니다.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 그릇입니다.남희원
제 생일날 아침 엄마께서는 미역국을 끓여주셨습니다. 식탁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 여느 때와 달리 밥 옆에 미역국 한 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순간 작년의 생일에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오늘까지의 일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미역국을 끓여주셨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밥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던 따뜻한 미역국 그릇, 그 속에서 엄마의 많은 정성을 살짝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감기가 들었던 저는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어디론가 나가셨던 엄마는 자기 전에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엄마가 어디 가셨는지 몰랐지만 미역국 그릇을 보니 엄마가 꽤 멀리 떨어진 상가까지 가셔서 미역국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러 가셨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조금 이른 아침을 함께 했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선물을 풀어 본 뒤,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모두 미역국이 맛있다고들 했습니다. 그 한 마디에 엄마의 피곤한 눈이 반달 모양으로 흐뭇하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엄마가 나를 힘들게 낳으신 후에도 누군가가 미역국을 끓여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한 사람의 태어난 날을 잊지 않고 챙겨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같이 감사해주고 축하해주는 가족들이 내 곁에 있다는 행복도 같이 느껴가면서.

미역국을 끓이기 전 미역을 불려놓은 모습입니다.
미역국을 끓이기 전 미역을 불려놓은 모습입니다.남희원
평소에 미역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도 벌써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먹고 두 번째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미역국이 오늘은 왜 이리 맛있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졸림과 피곤함도 잊어가면서 저를 위해서 미역국을 끓여주신 엄마께 맛있다는 칭찬 그 한마디로 엄마의 정성에 대한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듯합니다.

엄마 생신 때는 엄마 자신을 위해 미역국을 잘 끓이시지도 않는 엄마. 그런 엄마의 태어나신 생일날에는 제가 귀찮고 기억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일 축하를 거른 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아무 말도 없는 엄마는 섭섭함을 비추시지도 않습니다.


지금도 보글보글 끓는 미역국 냄비 안을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들여다봅니다. 조미료를 넣으면 맛은 있지만 몸에 안 좋다며 조미료를 넣지 않고 직접 국물을 우려내서 끓이시는 엄마. 평소 조미료를 넣은 식당의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지만 오늘만큼은 미역국에 들어있는 뽀얀 연두색의 국물이 유난히 맛있게 보입니다.

미역국이 잘 끓고 있습니다.
미역국이 잘 끓고 있습니다.남희원
끓이기 번거로우셨을 미역국을 새벽녘부터 일어나서 정성을 담아 끓여주신 엄마와 1년에 한번 돌아오는 생일을 진심으로 자신의 일인 양 축하해준 가족들, 이런 가족들이 있기에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행복합니다.

엄마가 생일날 끓여주신 정성이 듬뿍 담긴 미역국 한 그릇은 내년 돌아올 생일에도 그 다음 생일에도 어김없이 등장할 겁니다. 그리고 제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가족 간 사랑은 끊이지 않고 이어질 테니까요.

돌아오는 3월 21일은 엄마의 생신이십니다. 그날만큼은 정말 잊어버리지 않고 달력에 꼼꼼히 메모해 두었다가 축하해 드릴 겁니다. 엄마가 저에게 해주신 것만큼 해 드리기도, 해드릴 엄두조차도 내지 못하겠지만 그 중 조금이라도 갚아 드리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문득 제일 가까이 있는 엄마의 생신이 기다려집니다. 단 1%라도 감사함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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