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집 대문을 나서던 날

수련회 한번으로 인해 동생이 달라 보입니다

등록 2006.02.22 14:46수정 2006.02.2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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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늦었잖아요 빨리 좀 가요!”


오늘(22일) 아침에도 귀를 울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떴습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엄마와 동생이 수련회 가방을 붙잡고 서로 실랑이를 하고 있더군요. 늑장은 자신이 부리고 있으면서 짜증을 내는 동생과 그것을 상기시켜주시려는 엄마의 충돌이었습니다.

오늘은 동생이 교회에서 주최하는 1박 2일 봄방학 수련회에 가는 날입니다. 사실 그 말을 듣고부터 저희 가족은 들떠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동생의 짜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요.

동생 역시 수련회에 간다는 생각에 어제부터 들떠 있었습니다. 잘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잔뜩 쌓인 여행용 가방을 꺼내 먼지를 털고 옷을 챙겨 넣고 세면도구를 넣고. 그러다 장난감을 챙겨 넣으려던 것을 엄마께 들켜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요.

물건을 잔뜩 넣은 뚱뚱한 동생의 여행용 가방
물건을 잔뜩 넣은 뚱뚱한 동생의 여행용 가방남희원
오늘 아침에 동생은 자기 혼자 접수처에 어떻게 가서 등록비를 내고 접수를 하냐며 투덜거렸습니다. 사실 동생은 의외로 겁이 많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지만 가족이 없고 낯선 기도원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워낙 활발하고 적응력이 뛰어나 낯선 곳에서도 잘 적응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동생이 간 다음에 휑한 동생의 책상을 둘러보았습니다. 집을 요란스럽게 활보하던 제 주인이 없어지니 책상도 풀이 죽은 듯 보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주인이 없어진 동생의 책상입니다.
주인이 없어진 동생의 책상입니다.남희원
오늘따라 유난히 깨끗한 집안이 왠지 평소와 달라 서먹서먹합니다. 온 집안에 잘린 파지와 널브러진 장난감을 보면서 동생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지나가던 하루가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평소에 많이 구박했던 동생인데 단 하루라도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 동생이 보고 싶어집니다. 지금 동생은 교회로 향하는 차를 타고 있을까, 혼자 접수처에 가서 쭈뼛쭈뼛 등록을 하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동생 생각이 자주 나는 제가 스스로도 어색합니다. 하지만 이게 흔히 말하는 ‘혈육’간의 정인가 봅니다. 단짝친구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지만 가족만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따라 여느 때와 같이 서 있는 대문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들여다보게 됩니다. 언제쯤 동생이 올까 하는 기다림과 동생이 어느새 도착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오진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잔소리하고 구박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대문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가 봅니다.

집을 떠나는 동생의 모습입니다.
집을 떠나는 동생의 모습입니다.남희원
동생은 내일 돌아오지만 동생의 모습을 갈망하는 눈과 마음속의 조그마했던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그러나 내일 동생이 오면 이런 감정들은 전부 다 없어지고 다시 평범했던 우리 가정의 모습으로 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습니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내가 평소에 무시하고 묵인해 두던 존재도 없어지면 오히려 서운할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문득 동생이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저도 이런 제 자신의 마음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저도 이제 제가 얼마나 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알았습니다. 오늘은 동생을 못 보겠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동생이 달라 보일만큼 오늘은 저에게 뜻 깊은 날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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