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74회

등록 2006.02.23 08:28수정 2006.02.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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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광와노인은 매우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마치 숨겨야 할 것을 들킨 사람처럼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나직하게 탄식을 불어냈다.

“아미타불....아미타불...... 그것만큼은 묻지 않길 바랬는데....호오..... 아미타불...”


머리는 깎았다고 하나 가사를 걸치지도 않았고 행동거지가 승이 아닌 노인이 자연스럽게 불호를 외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더구나 과장되게 속을 들킨 것 같이 행동하는 짓이 더욱 가관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아미타불......”

그가 잠시 망설이며 대답을 못하고 있자 후송노인이 말했다.

“그 대답은 노도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러자 광와노인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린가? 아닐세. 아니야..... 자네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된 적이 없는 일이네. 대답은 어차피 노납이 해야 하네.”

그는 후송이 끼어들 것이 두려운 듯 과장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담천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답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네. 음... 뭐랄까..... 그렇군. 그것이 좋겠군. 불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다네. 화장을 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야 하지. 육신이 완전히 타도록 충분히 쌓아 올려야 한다네.”

“........?”

“당시 담가장이 그런 형국이었네. 자네의 부친은 반드시 죽어야만 했어. 천동에서 손을 쓰지 않아도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었네. 이미 여기저기서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상태였지. 천동은 거기에 불씨 하나를 던졌을 뿐이네.”

광와노인은 아주 적절한 비유를 찾아낸 자신이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네 부친은 너무 충성스런 사람이었지. 아니 고집불통의 어리석은 사람이라 해야 옳을 게야. 자네부친이 개백정만도 못한 놈에게 왜 그리 끝까지 충성을 하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네. 노납은 당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네.”

광와노인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가셨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는 엄숙하고도 항거할 수 없는 고승의 위엄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노안(老顔)은 세월의 흔적으로 남은 주름살투성이였지만 마치 나한상(羅漢像)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신이 모셨던 남옥 장군마저, 그것도 분명한 역모의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숙청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네 부친이 겨우 한 짓이 뭔지 아는가? 단지 균대위 수장 직을 사임하는 것이 고작이었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지.”

“사람마다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고, 지켜야 할 가치가 다른 법이오.”

“부친이라고 지금 변명을 해주는 겐가? 자네는 몰라. 절대 알 수도 없었겠지. 당시 균대위의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 아는가?”

광와노인의 눈에서 정광이 쏘아졌다. 그 눈빛은 너무나 맑고 깊어 득도한 고승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것이었다.

“자네가 다시 균대위를 이끈다고 들었네. 가소로운 일이지. 풋... 그 정도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해. 그 알량한 힘으로 무엇을 하겠나? 비원이 무림을 움직여 자네를 도울 것이라 기대하나? 물론 그렀겠지. 지금도 그 짓거리나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자네는 어차피 이용만 당할 뿐이야....”

“........!”

“아닐지도 모르지.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그런다 해도 변한 것은 없어. 어차피 자네는 주씨 황실의 개밖에 더 되겠나? 자네 부친처럼 말이야.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것은 부친을 빼다 박았으니 더 생각해 볼 여지도 없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 광와노인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 당시 균대위의 힘을 누가 알까? 그 진정한 힘은 아무도 몰랐을 게야. 금의위 모두가 달려든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였지. 아니 균대위의 힘은 한 순간에 황실마저도 뒤엎을 수 있을 정도였어. 전 무림을 상대로 싸운다 해도 지지 않을 힘이 있었단 말일세.”

“......!”

“그 힘을 가진 인물이 자네 부친이었단 말이네. 부친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우리들이 있었단 말이지. 부친의 말 한마디에 화약을 지고 주원장의 침실을 뒤엎을 인물들이 수백 명이었단 말일세. 사문에서 파문당한 것도 참을 수 있었네. 사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억울하지 않았네. 허나.....”

광와노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떨려나왔다. 격동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을 버리고 홀로 조직을 떠나는 자네 부친 만은 용서할 수 없었네. 그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바쳤던 우리의 충성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었네. 자신만 떠나면 해결될 일이었나? 그저 피해버리면 다 되는 일이었느냐는 말이네.”

할 말이 없었다. 광와노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틀린 말이 아니었다.

“........!”

이런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추상적으로 선과 악이 부닥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부닥쳐 일어나는 갈등은 극히 미미하다. 대부분의 갈등은 자신이 배우고 익힌 윤리와 도덕, 그리고 양심이라는 잣대와 지키고자 하는 가치관이 또 다른 사람의 그것들과 부닥칠 때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윤리와 도덕이,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했던 가치관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나 그 동안 지탱하고 있었던 사회구조가 급격히 무너져 내릴 때 가치관의 혼란은 더욱 증폭되고, 그 갈등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그 힘이 두려워 자신마저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하는 짓이라곤 고작 낙향하는 것뿐이었단 말일세. 차라리 아예 몸을 숨겼다면 이해할 수 있었지. 허나 그는 끝까지 개만도 못한 주원장의 탐욕과 영화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야. 전혀 그럴 가치 없는 맹목적인 충성심 때문에 말이야.....”

만약 담명장군이 몸을 숨겼다면 남옥대장군의 숙청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균대위는 아마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담명장군은 사직했지만 몸을 숨기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존재했고, 존재 자체만으로 균대위의 인물들을 제어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던 것이다. 뒤를 이은 강중장군이 형식상이나마 수장으로 자리 잡아 남옥대장군의 숙청을 수행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래서 뭐가 남았나? 결국 자신의 처자식조차 지키지 못하고 죽기 밖에 더 했던가?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었는가 말일세.”

“광와....”

폭포수처럼 튀어 나오는 말에 후송이 나직하게 불렀다. 광와노인은 그 부름에 자신이 흥분했음을 느끼고는 탄식을 불어냈다.

“그렇군..... 이미 지나간 일인 것을..... 더 이상 말을 해 무엇하랴! 어차피 저 아이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접어든 것을...”

“자네가 흥분하는 것을 본 것이 벌써 십년도 더 지난 것 같으이.....”

“허허.... 아직까지 혈기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네...... 좋으이... 후송....!”

그는 탄식처럼 중얼거리다 후송을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말게. 노도는 자네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겁이 덜컥 난다네.”

“앞으로는 그럴 일도 없을 걸세.”

“자네.....?”

“노납의 부탁을 들어주게. 저 아이와의 싸움은 오직 노납만이 할 것이네. 그것은 당시 저 아이를 거두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함이지. 어차피 피에 절은 이 손으로 저 아이를 거두고 싶네. 허나 만약 저 아이가 살아있게 된다면 아무도 저 아이에게 손대지 말게나. 그저 천마곡으로 들어갈 수 있게 길을 가르쳐 주게나.”

“광와.... 정말... 자네....?”

“판관이 당할 정도라면 노납 역시 쉽지는 않을 걸세. 하지만 자네에게 약속하지. 노납은 반드시 저 아이의 목숨을 이 손으로 거둘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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