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카프 궁전에서 내려다 본 보스포러스 해협이태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공격에 나선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모든 역사는 필연일 수밖에 없듯이 이 역시 주변 환경으로 보아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다음에 설명하기로 한다. 콘스탄티노플 공략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성공을 한다.
거기에는 서양의 전쟁사를 바꾼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밤낮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고심을 하던 메흐메드 2세에게 그 전의 해 가을에 대포전문가인 우르반이라는 헝가리인이 나타났다.
사실 우르반은 먼저 대포 설계도를 들고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에게 대포를 살 걸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그는 오스만 튀르크의 수도 아드리아노폴리로 가서 메흐메드 2세를 만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삼중성벽을 파괴할 만큼 강력한 대포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 남자를 접견한 술탄은 비잔틴 황제에게 요구한 액수의 네 배에 달하는 금액을 주기로 하고 대포를 만들게 하였다.
60마리의 소와 200명의 병사가 끄는 거대한 대포가 완성되었다. 이것으로 삼중성벽을 공격하여 비잔틴 제국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자 또 다른 기상천외한 작전을 감행한다.
성으로 들어오는 금각만의 입구는 비잔틴 제국이 쇠줄로 막아 출입을 일찌감치 봉쇄해 놓았다. 배로 공격할 수가 없자 메흐메드 2세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금각만에 이르는 수십km의 산길에 배를 밀어 금각만에 띄웠다. 이 사건을 '튀르크 함대 산을 넘다'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이를 계기로 공방전은 한층 더 치열해지고 비잔틴제국의 총대장이 부상으로 말미암아 열어준 성문을 통하여 아군과 적군이 동시에 물밀듯이 밀고 들어왔다. 결국 성문을 잠그지 못하여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스탄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