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시작... 2002년 3월 16일 광주 염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노무현 후보가 노사모회원들과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다. 이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노풍'이 불기 시작, '바보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 노무현'까지 이르게 된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바보 노무현.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나,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나 묘한 감정선의 굴곡을 느낄만합니다.
적어도 2002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이 말은 하나의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소신을 지키는 뚝심있는 정치인'의 대명사였습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희생하는 보기드문 '이타적인 행동'의 표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희망 정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노무현은, '금배지'를 잃은 대신 '별명'을 얻었습니다. 바보 노무현. 그것은 92년 14대 총선, 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이어 세번째 부산에서 고배를 마신 그에게 붙여준 훈장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낙선 인터뷰'에서 "바보의 반대는 기회주의와 편의주의"라며 "이를 청산하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려온 게 내 정치인생"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런 그가 정작 금배지보다 훨씬 큰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얻은 뒤 별명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 누구도 '대통령 노무현'을 이전의 '바보 노무현'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애증의 정도 차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도 복잡미묘한 감정에 빠져 '지지'와 '지지 철회' 사이를 냉·온탕 드나들 듯 합니다. 이유야 제 각각이지만, 이미 등을 돌린 지지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는 2006년 2월 현재 '바보 노무현'은 정치용어 사전에서 사문화되고 있습니다. 야당의 '대통령 조롱하기'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이전 지지층 일각에서조차 대통령 노무현을 '진짜 바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노무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졌다던 이들이, 지금은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토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