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까지 올린 닭들의 보금자리

수십억 대 강남땅보다 더 비싼 땅을 만드다

등록 2006.02.27 10:38수정 2006.02.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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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톨릭농민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한 지 아직 일 년도 안되었지만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지라 농촌 생활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알고 있지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이 지난 여름에 경남 창원에서 함안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물류창고도 없이 더부살이를 하다가 외부 지원을 받아 그럴듯한 창고를 짓고 이전을 하게 되었지요.


농민운동을 하는 곳이다 보니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일은 많지요. 그래도 사람을 많이 두지 못합니다. 그렇게 몇 안되는 사람들 가운데 저만 아직 총각입니다. 총각이라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총각이어서 당당하고 자랑스러울 때가 있는데, 바로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결혼을 했다면 이렇게 좋은 봄날에 집에 가만히 있질 못했을 것 같아서요.

농민운동을 하며 농민들이 생산한 농작물을 유통시키는 일을 하다 보니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해도 흘리는 곡식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바닥이 깨끗한 곳에 흘렸을 경우에는 조심스레 담아 돌을 일어내고는 우리들 점심으로 먹습니다. 하지만 바닥이 지저분하거나 바쁠 경우에는 그렇게 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깝지만 그냥 버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닭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닭을 몇 마리 키우면 음식 쓰레기는 물론이고 웬만한 곡식들도 버리지 않고 다 먹어 치웁니다. 이른바 버려서 아까운 것이 전혀 생겨나지 않는 것이지요. 게다가 달걀을 낳아서 좋고, 물류창고를 방문하는 어른과 아이들에게 생생한 교육장이 되어서 좋을 것이지요.

가을 하늘보다 더 푸른 하늘을 자랑하는 봄날의 휴일을 맞아 추운 겨울 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봄날에 총각 혼자 봄나들이는 못 가고, 닭이 살 집을 지었습니다. 창고 앞에 있는 작은 마당에 닭을 다섯 마리쯤 키워보려고요.

그러면 닭이 온갖 음식 쓰레기를 다 없애 줍니다. 지금까지는 음식 쓰레기를 화단에 구덩이를 파서 묻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아무것도 자란 것이 없는 빈 땅이었기에 묻었는데, 여름이 되면 그곳에 온갖 채소들이 자랄 것이니깐요. 하지만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여 있어 채소를 심을 땅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문을 달고 그물을 둘러쳐서 고양이나 다른 천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지붕에는 흙을 올려 채소를 심을 것이고요.
문을 달고 그물을 둘러쳐서 고양이나 다른 천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지붕에는 흙을 올려 채소를 심을 것이고요.배만호
원래 집을 지을 때는 둘레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짓는다고 하지요. 그래서 옛집들은 다들 흙과 나무로 지었는데, 요즘은 집을 짓는다고 미국이나 아마존 유역, 혹은 지구를 반 바퀴나 넘게 돌아서 재료를 가져옵니다.


저는 창고에 많이 있는 플라스틱 파레트와 나무 파레트, 그리고 시골 동네를 돌면서 주워온 구멍 난 양철지붕, 뜯어낸 문짝 등을 이용해 닭장을 지었습니다. 이른바 폐품을 재활용한 것이지요. 돈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못 몇 개만 박았고, 나무 두어 개만 잘랐습니다.

오전 내내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그리고, 재료를 구하고 닭장을 짓느라 점심을 아주 늦게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채소를 심을 화단에 퇴비를 깔고, 담장을 약간 손질하고 닭장을 마무리했습니다. 하루가 참으로 바쁘게 지나가더군요.


지붕에 흙을 올렸습니다. 몇 십억이 넘는 강남땅보다 더 값진 땅이지요. 곧 푸른 채소들이 자랄 것입니다.
지붕에 흙을 올렸습니다. 몇 십억이 넘는 강남땅보다 더 값진 땅이지요. 곧 푸른 채소들이 자랄 것입니다.배만호
닭장 속에는 닭들이 쉴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커다란 판자를 걸쳐 두었습니다. 닭들은 천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저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 좀 자라면 문을 열어 두어도 되지요.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이곳이 제일 안전한 곳임을 알기에 알아서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주인은 문만 닫아 주면 됩니다. 그렇게 며칠 하다 보면 닭들이 아주 귀엽게 보입니다. 아침이 되면 문을 열어 달라고 모두 문 앞에 모여 시위를 하기도 하거든요. 그때 문을 열면 경주를 하듯 달려 나오지요.

화단을 손질하고 나온 흙을 지붕에 올렸습니다. 어림잡아 한 평은 넘어 보이는 땅이지요. 강남에 있는 땅 한 평이 몇 십억이 된다고 하는데, 저 땅은 얼마나 할까요? 콘크리트 위에 굳이 흙을 올리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가진 땅이 없기에 저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마당은 온통 콘크리트로 덮어 두었고, 흙은 아주 조금만 있으니까요. 그물까지 사 와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참았습니다. 일부러 차를 타고 나가야 하게 때문이지요. 하루만 참으면 차를 타고 나갈 일이 있고, 그때에 사오면 되거든요. 그러면 기름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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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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